▲학교 수업까지 땡땡이 치고 가을 지리산으로 떠났습니다.
송성영
"당신 홧기운 때문에 숨이 막혀 못살겠다!""누구 때문에 내가 화를 내는데... 못 살겠으면 집을 나가면 되겠네!""그래, 그럼 나가지!"
아내와 옳으니 그르니, 사느니 마느니 해가며 대판 싸웠습니다. 싸움의 종말이 그렇듯이 험한 말이 오가고 서로 상처만 입혔습니다. 그렇게 집을 나왔습니다. 가출한 셈이지요. 학교 수업까지 땡땡이치고 무작정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모처럼만에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게 될 아이들은 기분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니 무거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몇 년 전에도 가출했습니다. 아는 사람의 괜한 충고를 받아들여 어수룩하게도 한겨울에 전기밥솥까지 챙겨, 전기도 없는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오돌오돌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하나 달랑 들쳐 메고 길을 떠납니다.
무작정 지리산으로 접어들어 가... 어디로 갈까?무작정 지리산으로 접어들어 갔습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충남 공주에서 생활할 때 계룡산 갑사 산내 암자, 내원암에 있던 석호스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스님과는 오래전부터 전화 통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은 내가 결혼 전, 산 생활 할 무렵부터 20년 넘게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왔는데 2년 전부터 지리산 칠불사 선방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입니다.
칠불사로 향하다가 문득 칠불사 길목에 자리한 범왕 근처 작은 암자에 머물고 계신다는 초은스님이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큰 절 살림을 다 접어두고 아픈 사람 마음자리 어루만져가며 욕심 없이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에 몰두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머물고 계신지도 모르고 범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았습니다. 급경사를 올라 힘들게 그 이름조차 없는 암자를 찾았지만, 초은스님은 출타 중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석호스님이 있었습니다.
1년 전, 이미 칠불사 선방에서 나왔다는 석호스님은 예의 그 호탕한 웃음으로 반깁니다. 집 나온 사연을 이실직고했더니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가출은 무슨 가출요! 쫓겨 나셨구먼!""뭐 그런 셈이죠..."
석호스님이 머물고 있는 암자가 비좁아 하룻밤조차 묵을 수 없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읍내에 볼 일이 있다는 석호스님을 따라나섭니다. 석호스님은 맘 편히 풀어놓고 기거할 수 있다는 불일암을 찾아가 보라며 지리산 쌍계사 부근에 자리한 국사암까지 안내합니다.
국사암에서 불일폭포가 있는 불일암까지 2킬로미터 정도. 산을 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등산화조차 없습니다. 평소 고무신을 싣고 다니는데 날이 쌀쌀해진 탓에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단화를 신고 있습니다. 단화를 신고, 산행을 하게 될 판입니다. 그래도 2킬로미터 쯤은 가뿐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문득 20년 전, 단화를 신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올랐던 기억이 나서 스님과 헤어지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가출하고 출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건 또 뭔 뚱딴지같은 소리요?""가출해서 뒤틀린 마음자리 추슬러 돌아가면 출가나 다름없지 않을까요?"그랬습니다. 20년 전, 범왕에서 가까운 삼정 마을 산속 어딘가에 토굴 생활을 하고 계신다는 초은스님을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 출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이번에는 출가가 아닌 가출을 하여 다시 초은스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가출과 출가의 앞뒤 말 차이처럼 20년이라는 시간이 찰라와 같습니다.
20년 전 역시 지금처럼 초은스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사나흘 머물다가 내려와 인도 고행 길을 준비하다가 타고르에서 불화를 배우겠다며 인도행을 꿈꾸고 있던 아내를 만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로 떠나기도 전에 큰 아이가 생겨 그 자리에 눌러앉아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둘 다 생각지도 않았던 결혼 생활이었기에 인도 고행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지리산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