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백 박사(가운데)의 모습.
연합뉴스
며칠 전, 집에서 묵은 파일을 뒤져 '문건'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니 햇수로 20년 가까이 된 것입니다. 그 무렵 필자는 미국 워싱턴으로 출장을 갔다가 평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분이 있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곳 한국과(課) 책임자로 계시던 양기백(93) 박사님이 바로 그 분입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후학이자 양 박사님은 미국사회에서 한국학의 권위자로 불린 분이어서 평소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초면의 불청객이었지만 양 박사님은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게다가 도서관학을 공부했다고 했더니 일부러 지하에 있는 한국과 서고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북한자료의 원전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던 점입니다. 정부수립 후 '국비 유학생 1호'로 미국 유학을 떠난 양 박사님은 1949년 미국 의회도서관 직원으로 채용된 이래 2005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46년간 이곳에 근무하셨습니다.
며칠 뒤 두 번째로 찾아뵈었을 때 양 박사님은 보여줄 게 하나 있다며 개인서가의 파일에서 복사물 하나를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본인이 손수 제작한 우리나라 '국기'라며 한 번 구경하라고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국기'를 일개인이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근 반세기를 미국서 살아오신 분이 어떤 연유로 국기를 새로 만들게 됐는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양 박사님은 이내 제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 연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젠가 옆방에 있는 중국과(課)에서 잠시 들러달라고 해서 갔더니 한 젊은 미국인이 태극기를 가지고 와서 기증하겠다며 맡기고 갔다는 거였습니다. 그 미국인은 2차대전(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손자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던 중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이를 중국 국기라고 여겨 중국과로 가지고 왔더라는 겁니다. 그 미국인은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중국 문양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 박사님은 우리 국기, 즉 '태극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합니다. 우선 그 미국인이 태극기를 중국 국기로 인식한 것은 '태극문양' 때문인데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또 '태극기'가 그리기가 어려워 친근함을 주지 못하는 점도 국기로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양 박사님은 '국기'를 나타내는 영어단어 가운데는 'colors'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국기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색'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고로, '태극'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4서3경 가운데 하나인 <주역>에 처음 등장하는데 태극문양은 송나라 때 주돈이(1017∼1073)가 펴낸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태극문양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더 빠릅니다.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앞선 628년(신라 진평왕 50)에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에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으며, 1144년(인종 22)에 죽은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그리기 쉽고 친근한 '새로운 태극기'는 어떨까요이 점에 착안하여 양 박사님은 '한국(인)의 색'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평소 한국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양 박사님은 고금의 문서를 통해 우리민족을 상징할만한 색은 두 가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흔히 한민족을 '백의(白衣)민족'이라고 하는 데서 착안하여 '흰색', 그리고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푸른 하늘'에서 '푸른 색'을 우리민족의 색으로 결론내린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 박사님이 고안한 '국기'가 바로 아래 사진에 나온 국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