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극중 대통령인 이순재는 로또에 당첨되지만, "당첨이 되면 기부를 하겠다"는 말을 한 터라, 쉽사리 복권당첨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소란플레이먼트
"19."제 목소리를 들은 아내의 눈동자가 작은 종이에 빽빽하게 들어선 30개의 숫자를 순식간에 스캔합니다. 아내는 홈런왕 이승엽 수준의 동체시력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거리의 간판을 읽어내는 능력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형광펜을 든 그녀의 오른손은 요지부동입니다.
"20."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형광펜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23, 24, 43, 44." 아내는 오른손에 든 형광펜을 놓은 후 군데군데 노란 형광펜 표시가 된 작은 종이를 저에게 넘기며 한 마디 합니다.
"안 맞아도 어떻게 이렇게 안 맞니?""쩝. 그러게. 그놈의 번개는 대체 누가 맞는 거야?"
그도 그럴 것이 30개의 숫자 중에 형광펜 표시가 된 것이 달랑 3개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로또복권 얘기입니다.
삼국지의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처럼 뚜레쥬르, 파리바게트, 그리고 동네빵집인 '봉베이커리'가 무려 새벽1시까지 빵을 팔며 대치하는 작은 사거리를 지나면 문방구가 나옵니다. 이 문방구 간판에는 크게 로또판매점이라고 적혀 있고, 연속 2번 2등이 터졌다고 마치 모범음식점 표시처럼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데요. 외부 일정을 마치고 귀가를 하다 이 문방구를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 그렇다면 독산동 주민 중 2명이 이 문방구에서 로또 2등을 맞았다는 얘긴데, 나쁘지 않은걸?'며칠 전에 발표한 로또 497회 2등 당첨금이 약 7409만 원이라 합니다. 2등만 하더라도 삶이 팍팍한 사회과학 글쟁이에게는 평생 만져보기 힘든 목돈 아닙니까.
'아냐. 로또는 자본주의의 폐해야. 사람들에게 사행심을 조장하고 당첨된 사람들조차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사회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한 개인 차원에서도 항상 이성(理性)이 승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은 항상 나에게 로또를 사지 말라고 근엄하게 얘기하지만, 이 문방구 역사상 세 번째 2등 당첨자, 아니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첫 번째 1등 당첨자가 되고 싶다는 알량한 욕망이 가끔씩 승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게다가 로또를 사가도 아내는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최장 유통기한 일주일의 행복한 꿈을 꾸는 듯 보입니다. 솔직히 로또 다섯 장, 유통기한 일주일의 꿈 값이 5000원이라면 가끔은 질러볼 만한 것도 같습니다.
'인생역전' 로또!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