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성
- 연일 신문 1면 톱을 장식하는 분을 만나게 돼 영광이다.(웃음) 개념판사로 등극했는데 동료 판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무슨 개념판사냐. 그건 그냥 (시민들이) 만들어주신 말인데, 동료판사들도 나와 비슷하다. 그런데 그동안 근무했던 여러 법원에서 내가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긴장한다.(웃음) 개념판사는커녕 특이한 판결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울산에 있을 때 동료 판사 중에 검사 생활을 하다 온 분이 있었다. 같이 술을 마시는데, 그분 얘기가 검사들이 저를 보고 '돌아이'라 그랬단다.(웃음) 실제 만나보니 괜찮은 사람인데 그때 동조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일 잘하고, 유머감각 있고, 사교성도 있고 괜찮다고 평가한다."
- 그러니까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다기보다 겪어보면 미리 생각했던 것만큼 나쁜 놈, 돌아이는 아니라는 얘기다.(웃음) 내가 아는 게 부족하니까 판사나 직원들에게 고개 숙이고 눈을 깔려고 노력한다. 언론 좀 탔다고 유세 부리다간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웃음)"
- 이번 사건을 보면, 발단은 최은배 판사의 페북이었다. 더구나 이 판사는 최 판사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 좀 억울하지 않나. "왜 (<조선일보>가) 최 판사를 공격했겠나. 우리법연구회 회장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보기엔 과한 표현까지 있어서 먹잇감으로 잘 걸려든 거다. 한미FTA 통과 직후 내가 페북에 올린 글과 비슷한 취지의 글을 최 판사가 담벼락에 올렸길래 힘내라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랬더니 '우리법연구회 회장이 나서니까 회원도 거든다' 이렇게 엮어가려고 한 거다. 표현을 조심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일반인 중에서는 판사들이 굳이 '뼛속까지 친미' '빅엿' 이런 말 안 쓰더라도 의사표현이 가능하지 않느냐, 판사가 그렇게 과한 표현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솔직히 SNS라는 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기가 그냥 편한 소리 하는 공간 아닌가. 판사라고 거기(SNS)에서까지 그 정도 말도 못하나? 그러려면 차라리 치워버리고 친구끼리 술자리에서 얘기해야지."
이정렬 판사, SNS에 어떤 글 올렸길래 |
이정렬 부장판사가 SNS에 글을 올릴 때마다 조중동은 공격했고 누리꾼들은 환호했다. 그는 그동안 SNS에 어떤 글을 올렸던 것일까. 21일 오전 현재 이 판사의 트위터 팔로어는 2만7천여 명, 페북 친구는 1400명 수준이다.
이 판사는 오래전부터 트위터와 페북 계정이 있었으나, 활발하게 글을 올린 것은 최근이다.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은 지난달 22일. 한미FTA 통과 직후 페북에 "피곤한 몸을 끌고 퇴근해서 들어왔더니 TV에서 나오는 황당한 소식... 우째 이런 일이"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다음날인 11월 23일에는 "어제는 날치기 때문에 우울했는데, 오늘은 나꼼수 덕에 많이 회복되었다. 나꼼수 만세~"라는 글을 남기며 의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뒤 25일 <조선일보>가 최은배 부장판사의 '뼛속까지 친미' 발언을 부각시키며 정치 편향으로 몰아가자 반어적인 표현으로 대항했다.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의 미래를 위해 한미FTA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키신 국회의원님들과 한미안보의 공고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것도 정치편향적인 글입니다."
이 판사는 한미FTA와 관련, 판사들의 의견표명에 대해 조중동의 공세가 계속되자 "진보편향적인 사람은 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 그럼 보수편향적인 판사들도 모두 사퇴해라. 나도 깨끗하게 물러나 주겠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에 뛰어들었다.
그가 "나꼼수 캐럴 겨우 다 외웠다. 나꼼수 31회 듣고 싶다", "오늘부터 SNS 검열이 시작되던가? 저는 검열이가 아니고 정렬이에요. 쫄면이 안된다니깐, 오늘은 냉면" 등의 멘션을 날릴 때마다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판화가 놓인 냉면사진을 트윗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18일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따끈한 정종이나 막걸리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논설위원이 아니라서 음주운전을 할 수도 없고"라는 말로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 19일에는 이 판사가 나꼼수라면, 가카새키짬뽕 패러디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조선>이 '시정잡배' 운운하며 공격하자 다음과 같이 맞대응했다.
"'시정잡배'라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동안 '고고한 척'하는 재판, '그들만의 재판'을 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정말로 '시정잡배'의 눈높이에서 재판을 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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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판사 게시물 중엔 냉면, 쫄면 이야기도 있고, <나꼼수>, 백분토론, 가카 캐럴 얘기도 나온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을 나도 보고 있다, 알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달라. 백분토론도 봤고, 끝장토론도 봤고, 나꼼수도 들었다. 똑같이 보고 느끼고 있다는 걸 표현했을 뿐이다. 사실 요즘은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서 부담은 된다. 하지만 '이 사람이 비록 판사지만 나랑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든다. 나쁘다고 보는 건 (내 생각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뿐이다."
- 한 달간 SNS를 해보니까 어떤가. "엄청 충격적이었던 게, 내가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나꼼수> 듣는다고 얘기하면 '사람냄새 난다' '훌륭하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동안 판사들을 사람으로 안 봤던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과연 판사들이 내 말과 생각을 알고 재판을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수요자가 원하는 재판 고민해야- 최근 법원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보는가. "소통 이야기하니까 각 법원에서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악회도 여는 게 생각난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긴 한데 우리 업무는 재판이니까 재판으로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들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이 법원이니까. '원고가 왜 이런 말을 할까' '피고가 저러는 이유가 뭘까' 이런 걸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 판사들이 1주일에 서너 차례 야근할 정도로 근무 강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국민들은 재판에 만족하지 못할까. "저는 이른바 '석궁사건'의 주심판사였다. 재판장과 나는 그 사건에 공을 많이 들였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화살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법원이 원하는 재판이 아닌, 수요자가 원하는 재판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법원에서 통계·사건 처리율·항소율·조정 건수 등 이런 숫자에 판사들이 목을 매지 않게 해야 한다. 재판은 재판하는 판사나 직원에게 맡겨야 한다. 대법원은 판사들이 신뢰받는 재판, 충실한 재판을 어떻게 할 건지 스스로 고민하게 해달라."
- 이 판사의 말을 들어보니 법원 내부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법원이 '국민과의 소통'을 얘기하는데, 우선 내부 사람부터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올해 법원 공무원 중에 두 명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었다. (기자가 법원 공무원 1만3천여 명 중 올해 자살 2명을 포함해 총 11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렇게나 많나? 사람이 죽었는데, 과연 법원이 1%의 잘못도 없을까. 그런데도 법원 당국은 반성은커녕 일언반구 말도 없다. 대놓고 법원 잘못이라고 유서라도 써야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래놓고 어떻게 바깥과 소통하겠다고 말을 하는가. 내부 소통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 몇 년 전 판사와 법원 일반직 공무원 간의 갈등이 있을 때 판사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생각으로 한 건가."처음 판사가 됐을 때는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판사나 직원들이나 똑같은 공무원이고 역할만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법에 상명하복이나 주종관계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판사가 직원에게) 지시하거나 우습게 보느냐. 이원조직이면 이원조직답게 서로 존중하고, 업무영역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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