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세종
이정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세종 27년, 임금 세종이 백신(白身) 송현수에게 전구부승(典廐副丞)이라는 관직을 내려주었다. 일종의 능지기다. 조정에서 반발했다. 음직으로 예우해야할 선조도 없는 송현수에게 관직을 주는 것은 특혜이니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간원에서 탄핵 직전까지 갔지만 승정원에서 옹호하여 덮고 넘어갔다.
세종은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두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 영응대군이다. 정실 소헌왕후 심씨 소생 막내아들이다. 세상을 떠날 때도 궁궐이 아닌 영응대군 사저에서 숨을 거두었다.
영응대군 열 살 되던 해 경복궁 사정전에서 처녀를 간선했다. 송현수의 누이다. 마음이 비단결 같고 착했던 송씨는 세자빈 봉씨의 동성애사건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세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며느리로서 끔찍이 귀여워했다. 허나, 송씨는 몸이 약했다. 결국 폐질(廢疾)로 소박맞아 친정으로 돌아갔고 영응대군은 정충경의 딸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했다. 따라서 영응대군은 왕비의 고모부였으나 현재는 아니다.
조선시대 잡직이 아닌 관직에서 관료들이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곳이 능지기, 궁지기, 창고지기다. 그래도 능과 궁지기는 생기는 것 없이 썰렁했지만 창고지기는 곡식을 다루니만큼 싸레기라도 떨어진다. 나라의 대표적인 창고는 광흥창과 풍저창이다. 광흥창은 관료들의 녹봉을 관리했고 풍저창은 궁에서 쓰는 쌀과 잡곡, 그리고 종이를 관리했다. 송현수는 풍저창 부사다. 가난한 송현수를 세종이 배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