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추모객들은 뉴욕 맨해튼 5번가 애플스토어를 찾아와 그의 부고가 실린 신문, 장미와 국화, 촛불, 애플의 상징인 사과, 아이폰 포장지 등을 놓고 갔다. 특히 "스티브 잡스,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컴퓨터 자판이 눈에 띤다.
최경준
잡스의 혁신철학은 '인간'... 아이폰과 SNS로 무장한 청년들의 시위기자가 잡스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로어 맨해튼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에서였다. 당시 자유광장에는 막 행진을 마친 1만5000여 명의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지난달 17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금융 자본가의 탐욕과 부패,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며 광장에서 노숙을 시작한지 19일째였다.
그들은 스폰지, 매트리스, 종이박스 등을 깔고 광장에서 잠을 잤다. 텐트가 허용되지 않아 비가 오면 대형 천막을 뒤집어썼다. 시민들이 기부한 빵과 피자로 배를 채웠다. 시민들이 가져다준 옷으로 추위를 버텼다. 소형 발전기를 돌려 얻은 전기로 간신히 노트북 몇 대를 사용할 수 있다. 주요 언론이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시로 인터넷에 광장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행진은 끝났지만 아직 시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시위대는 "우리는 99%다",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북을 두드리며 광장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이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은 물론, 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시위대들도 이 장관을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들 대다수는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 여름 영국과 프랑스를 휩쓴 청년들의 시위가 그랬고, 스페인의 '캠핑시위'가 그랬다.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중혁명, 시리아의 '모래폭풍'이 그랬다. 2008년 대한민국을 휩쓴 '촛불집회'도 예외는 아니다. 시위대들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이용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접속, 시위 소식을 전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무장한 청년들은 '뉴욕의 가을'로 명명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순식간에 확산시켰다. 워싱턴과 보스턴 등 미국의 주요 도시를 넘어서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갈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에 이어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 즉 SNS의 물결을 만들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종교인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닌 기업 CEO의 죽음을 향해 동원 가능한 모든 수식어로 애도와 찬사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고 간 이 모든 가치가 이렇게 거대한 사회적 파고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