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계백>의 의자왕(조재현 분).
MBC
백제 최후의 날을 다루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계백>에서는 계백(이서진 분)과 의자왕(조재현 분)의 관계가 특이한 인연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신라 선화공주(신은정 분)와 백제 무왕(최종환 분)의 아들인 의자왕이 왕자 시절부터 기득권층의 견제를 받았고, 그런 가운데서 선화공주 모자의 신변을 보호해준 인물이 계백의 아버지인 무진(차인표 분)이었다는 것이다.
백제 기득권층은 '신라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을 왕으로 모실 수 없다'며 왕자 의자의 태자 책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선화공주 모자를 아예 제거해버리려 했다.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던 선화공주는 제2회 방영분(7월26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어머니를 상실한 어린 왕자의 미래는 한없이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물론 드라마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의자왕이 신라 공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층의 견제를 받았다는 설정은 상당히 그럴싸하다. 신라 출신 왕후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도 없었으리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의자왕은 정말로 어려서부터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을까? 어머니가 신라 출신이라는 점이 의자왕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쟁점을 검토해보자.
오히려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 신라공주와의 결혼첫째, <삼국유사>의 서동요 설화. 이 설화를 통해, 무왕이 신라 여성과의 결혼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는지를 살펴보자. 그렇게 하다 보면,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이 그 문제로 인해 고생을 했는지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마 즉 서(薯)를 캐러 다니는 청년(童)이라 하여 서동이란 별명이 붙은 부여장(훗날 무왕)은 유명한 '얼짱'인 선화공주를 연모하게 된다.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딸이자 선덕여왕과 자매지간이었다.
부여장은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신라 서라벌에 잠입한 뒤, 아이들에게 마를 선물로 주면서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이 '19금(禁)' 노래가 그 유명한 서동요다.
민간에 유포된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선화공주는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공주가 궁에서 쫓겨나온 틈을 이용해 부여장은 그에게 접근해서 일단 친해진 다음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온 부여장은 진평왕에게 은밀히 금괴를 보냈고 이 덕분에 국내외적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나중에는 백제왕이 되었다는 것이 이 설화의 줄거리다.
설화에 따르면, 부여장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적을 남겼다. 진평왕에게 금괴 즉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모아둔 황금을 지금의 전북 익산시 미륵산에 있던 사자사(獅子寺)라는 사찰에 맡긴 뒤, 이 절의 주지가 그것을 진평왕에게 송부하도록 했다. 종교단체를 이용해 비자금을 국외로 송금했으니, 부여장은 정치자금을 상당히 잘 다루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서 부여장의 이미지에 흠집을 주지 않았던 듯하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진평왕의 칭송을 받는 부여장이 그저 대단하게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여장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신라 공주와 결혼한 사실은 부여장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되었을 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공주와의 결혼으로 무왕의 입지가 약해지고 그로 인해 의자왕의 지위까지 덩달아 불안해질 이유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42년 동안 신라와 14번 전쟁한 의자왕이 친신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