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에서 담덕의 형으로 나오는 담망 태자(정태우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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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덕은 정말 차남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담덕이 고국양태왕의 몇째 아들인지는 알려주고 있지 않다. 그저 "광개토왕은 이름은 담덕이고 고국양왕의 아들이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사료에서 담덕이 몇째 아들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역사소설가나 사극작가(이하 '역사작가')가 이에 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역사학자와 역사작가의 차이점이 있다. 역사학자는 특정 주제에 관한 사료가 없는 경우에는 일단 집필을 멈춘다. 사료가 없더라도 합리적 추론을 통해 사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경우는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역사학자는 그 주제에 관해 더 이상 기술하지 않는다.
이렇게 역사학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역사작가는 빛을 발한다. 역사작가에게는 상상의 특권이 있다. 사료에 직접적인 기록이 없더라도, 혹은 합리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단서가 전혀 없더라도 역사작가는 상상을 통해 사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기 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이 있다. 그것은 '기본적인' 조사작업 정도는 거친 다음에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소설가나 만화가들은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 사전조사를 진행한다. 예컨대, 음식에 관한 작품을 쓸 때는 노트나 카메라를 들고 식당 주방에 가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법정에 관한 작품을 만들 때도 그와 유사한 사전작업을 한다.
어떤 경우에 그들은 역사학자들을 뺨칠 정도로 철저히 조사작업을 진행한다. 그들은 자료가 있는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또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기초 위에 상상력이 더해지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의 작품을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상력은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발'에서도 나오는 셈이다. 열심히 뛰어다녀야 더 좋은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없이 처음부터 상상만으로 작품을 쓸 경우, 그것이 얼마나 재미없는 작품이 되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법률용어나 소송 방식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작가가 오로지 상상만으로 창조해낸 법률 소설이 독자들에게 과연 얼마나 개연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역사작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고국양태왕의 장남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그렇다. 물론 사료에는 그가 장남인지 차남인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상상력부터 발휘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간접적인 단서는 없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연후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순서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그 단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