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 초상>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상
오주석은 두 초상화의 주인공의 이목구비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얼굴 학자인 당시 서울교대의 조용진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그 결과 두 초상화의 주인공은 해부학적 동일인임이 밝혀진다. 이목구비의 비례수치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주대 의대 이성낙 교수에게 의뢰하여 두 초상화의 피부과적 소견을 들어본다. 그 결과 귓불 앞의 점이 같을 뿐만 아니라 눈가며 이마의 주름까지 같고 게다가 노인성 피부병인 검버섯도 같은 곳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니 이 두 초상화는 한 사람을 그렸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채초상>은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분명 이채니 두 초상화 모두 <이채초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화, 특히 초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적이다. 극사실화가 많다. 그러나 우리 조선의 극사실화는 세계 어느 나라의 극사실화로서의 초상화와도 다른 경지다. 한마디로 엄정한 회화 정신의 표현이다. 얼굴의 흐릿한 검버섯마저 그대로 그리는 진실성이 우리 초상화에는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중국의 초상화가 사실적이라고 해도 병명을 진단할 정도로 사실적이지는 못했다. 겉보기는 같지만 조선과 중국 사이에는 엄밀성에 있어 그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한국의 미>에서 얻는 문화 철학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문화는 지금 좌표가 없다. 그저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친다고나 할까. 아무런 기초도, 철학도 없이 건물만 지어댄다. 도통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 정신도, 장인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에서 본 호랑이 그림의 그 섬세함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다. 절대적인 정신세계를 갖지 않은 이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채초상>에서 보았던 검버섯까지 표현하려고 했던 그 절대 묘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이런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이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지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주석은 <한국의 미>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문화는 선인들의 과거를 성실하게 배워 발전적 미래를 이어가는 재창조 과정이다. 문화의 꽃은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가 김홍도 못지않은 훌륭한 사회를 이룰 때에만 피어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워져야 한다. (맺는말에서)이와 함께 우리 모두가 문화에 대해 나름의 안목을 가져야겠다. 이것은 학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을 나와야 가질 수 있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가방 끈이 짧다 해도 그런 안목은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품격의 문제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의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오주석은 이를 <한국의 미> 서문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문화에 대한 안목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깊이 관련이 있다. 자긍심이 없는 민족은 어떤 문화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인은 자신의 일을 존중하고 거기에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주 소박해도 좋다.
칼국수집 주인이 자신이 만든 칼국수 한 가닥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돈 벌면 당장 때려치우겠다, 나는 이런 일을 자식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말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내가 만드는 칼국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칼국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칼국수 만드는 것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고수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이런 자존심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칼국수는 혼이 담긴 칼국수가 된다. 대통령이라도, 어느 재벌 회장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는 칼국수의 제왕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사는 사람, 나는 그를 칼국수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겠다. 그런 사람의 삶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진정한 문화적 자존심이고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전시행정을 막을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진정한 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푸른역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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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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