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에 따르면 대통령은 "젊은이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또한 진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중앙>은 "P세대라고 하고 G20세대라고도 하는 젊은이들이"라고, 슬쩍 '초를 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말 확대비서관회의에서 'P세대'를 거론했는지, 혹은 중앙일보를 위한 '사후 립 서비스'였는지는 논외로 치자. 사실이든 아니든, 이 대통령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의 열렬한 독자이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드러내 놓고 '천안함 P세대 장사'를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3월 24일부터 현재까지 'P세대' 관련 기사를 13건이나 쏟아내더니 급기야 4·19혁명 51주년 기념일인 19일에는 '천안함 들고 청와대로 간 P세대 대학생'들을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이 맞이하는 사진과 함께 'P세대 "북한인권법 통과시켜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 신문은 51년 전 많은 대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날 중앙일보에 실린 4·19 관련 기사는 달랑 '사설'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4·19, 건국 대통령을 풀어주자'는 것이다(필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재평가해 '역사의 새장'에서 풀어주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대학생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P세대로 '바꿔치기' 하면서, 유식한 말로 '패러다임 시프트' 운운하는 것은 반대한다).
누가 봐도 이건 '짜고 치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른바 'MB어법'을 빌리면, 이건 내가 청와대 출입기자를 해봐서 아는데, 일반인들이 청와대에 가서 수석비서관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매일 청와대 기자실(춘추관)로 출근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수석비서관들 만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힘든데.
박인주 수석이 '천안함 1주기 대학생 추모위원회'에 활동했던 대학생 15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도 아닌 비서관이 방문객을 만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일개 비서관이 단지 격려차 초청한 대학생들을 만나는 사진을 언론이 1면에 실은 것 또한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20대 그들, 국회-청와대로 달려간 까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은 동기가 '불순'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징조작은, 달리 말하면 <중앙>이 만들고 MB가 '가라사대' 하면 '진실'이라는 공식 만들기이다. 어디서 많이 봤던 수법이다. 그렇다. 과거 <조선>이 즐겨 쓰던 공식이다.
<동아>의 '신안보세대', <중앙>의 'P세대'는 '신안보상업주의'
지난 3월 조중동은 천안함 사건 1주기를 앞두고 일제히 '천안함 그후'를 되짚어보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이들이 기획에서 지향하는 바는 같았지만 접근 방식은 각각 달랐다. <조선>은 주로 네거티브(부정적) 방식으로 접근한 데 비해, <중앙>은 포지티브(긍정적) 방식으로 접근한 점이 눈에 띈다. <동아>는 네거티브 및 포지티브 방식으로 두루 접근했다. 포지티브 방식의 접근은 그나마 <중앙>의 '미덕'이지만 본질은 '안보상업주의'다.
특히 <조선>은 천안함 의혹을 제기한 과학자들에 대한 '흠집 내기'와 '골라 패기' 방식으로 이들의 주장을 교묘하게 왜곡했다. 예전의 '광우병 촛불 시위' 비판 기획과 판박이다. <동아>는 '군개혁 10개 분야' 실태를 점검하면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사실 거부 증후군 환자들'로 내몰았다. 또 '천안함 보며 등장한 '신(新)안보세대' 든든하다'는 사설(3월 25일)을 싣기도 했다. <중앙>은 포지티브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신안보세대'를 P세대라는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포장'했다. 신세대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새로운 유형의 안보상업주의다.
안보상업주의의 원조는 <조선>이다.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에 따르면, 이 신문은 80~90년대 북한의 위협을 과대포장하거나 위기의식을 부추겨 판매 부수를 늘리고 영향력을 키워왔다. 전쟁을 겪거나 북한 변수에 민감한 구세대를 겨냥한 네거티브 방식이다. 이에 비하면 <중앙>의 '신안보상업주의'는 천안함 사건을 겪은 신세대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종이신문'을 안 보는 20대 독자를 놓고 <조선>과 '쟁탈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그런데 급조해 만들다보니 중앙일보 안에도 P세대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다. 이 신문은 '대통령 말씀'을 전한 지난 3월 26일자 1면 "천안함 P세대가 대한민국의 희망"이란 기사의 말미에 이렇게 친절한 용어해설을 달았다.
"P세대=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실체를 인식하고, 애국심(Patriotism)을 발휘하고 있는 20대 젊은 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앙일보가 만든 말이다. 애국적인 태도 외에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실용(Pragmatism)적인 자세를 보인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Power n Peace)는 신념을 지녔고 국방의 의무를 유쾌하게(Pleasant)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개성(Personality)세대다."
애국심은 많지만 실용적이고,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는 신념하에 탤런트 현빈처럼 국방의 의무를 유쾌 발랄하게 받아들이는, 개성 만점의 '5P세대'다. 그런데 4월 19일자 1면에선 'P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Patriotism(애국심) 애국심에 눈뜨다. ▲Pleasant(유쾌) 현빈 세대. 군대로 즐겁게 ▲Power n Peace(평화) 힘 있어야 평화 지켜 ▲Pragmatism(실용) 진보-보수 이분법 거부 ▲Personality(개성) SNS로 자기 생각 알려 ▲Pioneer(개척자)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간다
뜻이 좋은 P라는 P는 다 가져다 붙이다보니, 개척자(Pioneer)가 새로 추가되어 '6P'로 늘었다. 그렇다면 정작 <중앙일보> 독자들은 이 P세대의 등장을 알린 기사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21일 현재 중앙일보 홈페이지(joinsmsn.com)에서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20개다. 찬반으로 나누면 12개가 찬성, 8개가 반대 의견이다. 그러나 찬성 의견의 태반은 북한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 등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고, 아래 인용한 것처럼 P세대에 대해 공감을 피력한 댓글은 3~4개뿐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대학생들이다. 암울한 대한민국에 한줄기의 강력한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 한국의 진보는 곧 세계가 버린 퇴보 추종 집단임을 큰 목소리로 외치기 바란다."(gai46)
P세대는 '어버이(Parent)연합 세대' '천안함-연평도 피격 세대'?
반면에 반대의견의 상당수는 P세대라는 규정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중에는 "천안함 P세대? 안보에 눈뜨는 건 좋은데 군미필자로 이루어진 정부여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jwbiotech)처럼 조롱하는 댓글도 있지만, "일부 대학생들의 이야기만 놓고 마치 전체가 저런 의견인양 젊은이들을 P세대로 묶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SaeHoon Lee)라는 진지한 댓글과 '입맛대로 해석하는 언론 플레이'라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정말 입맛대로 해석하는 한심한 언론플레이 같다. 설령 생각이 다를지라도, 위 대학생들을 탓하고 싶은 맘은 없다. 대학생의 말을 인용한 대로, 안보 앞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안보는 보수의 전유물도 아니고, 복지도 진보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들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대립이 아니라 안보와 복지라는 사안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런 그들을 '보수'라고 단정짓고, 젊은이들도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언플은 흉하다." (h_star83)
'대통령 말씀'을 기사화한 "천안함 P세대가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은 더 흉하다. 기사 말미의 'P세대'에 대한 친절한 용어설명에도 불구하고, 21일 현재 댓글(16개) 가운데 'P세대'라는 용어에 공감을 표시한 의견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독자가 아닌 일반 대중과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중앙일보가 하루가 멀다고 'P세대' 관련 기사를 쏟아낸 덕분인지 인터넷에는 'P세대'라는 개념 규정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공간이 여럿 생겼다. 그런데 중앙이 작명한 'P세대'에 공감을 표시한 댓글을 찾기 어렵고 '프로판가스 세대'니 '어버이(Parent) 연합 세대'니 '천안함-연평도 피격 세대'니 하는 말로 조롱한 댓글은 많다.
"그 20대가…. 가스통 들고 설치는 노인네들 아니더냐? 프로판가스 세대가 미래의 희망이야? / P세대라면 '어버이(Parent) 연합' 세대 말인가? 헐. 언제부터 노인네가 미래의 희망이 되었지? / P세대는 또 뭐냐? 피격세대? / 안 그래도 그 G20광고도 짜증나는구만. 혹시 천안함 피격세대를 P세대라고 한건 아니지?"
개성만점 'P세대'가 보는 P세대, "개 풀"
그러면 '개성 만점 P세대'가 자기 생각을 알린다는 SNS(사회관계망)에서는 어떤 생각들일까? 필자는 SNS에서는 'P세대'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페이스북의 '봉숭아학당'이라는 그룹에서 시험 삼아 '신세대 어법'으로 즉석 여론조사를 해봤다. 이렇게.
- 중앙일보가 천안함 사건을 겪은 20대를 'P세대'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공감하십니까?
1) 강추 공감 2) '개 풀'(개 풀 뜯어먹는 소리)이다
30명이 '개 풀'에 공감을 표시했고, 그보다 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에 공감을 보탰다. 그 내용까지 일일이 옮기진 않겠다. 결과적으로 중앙일보의 '상징조작'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얘기다. 믿기 어려우면 <중앙일보>도 즉석 여론조사든, 전화 여론조사든 시험 삼아 해볼 것을 권유한다. '공감'인지 '개 풀'인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어버이(Parent) 연합' 세대가 P세대인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