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저)
을유문화사
러셀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진리추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누구나 진리추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왠지 의무감에서 나오는 소리로 들린다. 내게 큰 공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러셀은 다르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주 어린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절부터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왜 반짝이는지, 삼라만상의 이면에는 수의 원리가 있다고 말한 피타고라스의 말을 알고 싶었다"고 썼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말을 각자의 가슴 속에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진리추구에 대한 열정을 더 이상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러셀은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 호기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다. 드러난 것 이면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알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러셀을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수학의 원리, Principia Mathematica>는 본질적인 것을 수로써 풀어보고자 하는 러셀의 꿈을 그린 책이다. 그것은 뉴턴이 만유인력을 기술한 <프린키피아>에 도전하는 또 다른 <프린키피아>(원리)였다. 그는 이 책을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썼는데 무려 1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하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책을 쓰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작업이었는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1907년에서 1910년까지, 나는 1년에 8개월 정도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씩 작업을 했다. 원고가 점점 방대해지자 산책길에 나설 때마다 집에 불이 나 원고가 타버리지 않을까 염려하곤 했다.... 마침내 그것을 대학 출판부로 옮겨가게 되었을 때, 양이 얼마나 엄청났던지 낡은 4륜 마차까지 대령시켜야 했다." (<러셀 자서전, 상> 269쪽)그의 지적 탐구는 나이 40을 넘기면서 철학으로 이어진다.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그의 진리탐구는 우리가 영원한 명저로 이야기하는 <서양철학사>(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에서 볼 수 있다. 1천여 쪽에 이르는 그 방대한 책을 보고 있노라면 한 인간의 지적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철학의 세계를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무인지대'라 정의하고 2천 년 철학의 역사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 나갔다. 그는 어떤 대철학자에 대해서도 결코 주눅이 드는 법이 없었다. 칸트마저 러셀에게는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없었다. 서양철학 전체를 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러셀만의 자신감이었다.
러셀의 진리추구는 그를 철저한 자유주의자로 만들었다. 어떤 것도 그 앞에서는 권위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사상에는 머리를 저었고 자신의 이성을 믿으며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하였다. 그럼, 그가 추구한 자유주의자란 무엇일까. 그는 자유주의자 10계명이라고 하는 글로 이것을 정리한 적이 있다. 이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