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이 없고, 유독 대형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14번 국도
성낙선
14번 국도에서 자동차들과 사투를 벌이다
가조도를 돌아 나와서는 다시 14번 국도로 올라선다. 왠지 사지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우회로가 있으면, 멀리 돌아서 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 길로 가고 싶다. 하지만, 이 근처에 다른 도로는 보이지 않는다(도로는 있는데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거제도를 빠져나가려면 오로지 이 길을 달려야 한다.
갓길도 없는 도로를 다시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면서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운전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친 건 물론이고,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요란하다. 단순히 자동차 소음만으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박박' 긁거나 '퍽퍽' 쳐대는 소리다. 드르륵, 덜덜덜, 탕탕탕…. 온갖 요란한 소리들이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그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와 머릿속까지 강타한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사등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신거제대교까지, 14번 국도가 지나가는 구간은 약 5㎞에 불과하다. 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그 이상이다.
나는 오늘을, 하루 종일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과 사투를 벌인 날로 기록한다. 거제도의 14번 국도는 내 생애 최악의 도로다. 세상에 이런 길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국도를 달렸지만, 이곳의 도로처럼 위험한 길은 달려보지 못했다. 자전거로 통행하는 데 지나치게 큰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도 우회할 길이 없다. 이 도로를 이대로 방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거제대교를 넘어서, 거제도를 빠져나와서는 통영시 죽림지구로 들어선다. 이로써 통영 시내에서만 벌써 삼 일째 밤을 맞는다.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긴 날들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웬만하면 오늘로 통영시를 벗어나 고성군으로 들어서고 싶다. 하지만 거제도를 벗어나서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의욕이 나지 않는다.
죽기 살기로 달려와 이젠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긴장이 풀리면서 손가락 하나 꿈쩍하기 싫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숙소를 찾아 기어들어간다. 오늘 하루 종일 17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매일 100여 장 이상의 사진을 찍은 것과 극히 비교가 된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던 하루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2㎞, 총누적거리는 37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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