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평인일주로에서 바라다본 바다와 하늘
성낙선
슬럼프에 빠졌다, 그런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어제 후배와 함께 통영으로 들어서면서 국도를 타는 바람에 통영 시내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죽림지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계속해서 해안선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폭이 좁은 땅 위를 가로지르는 길이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사이 잠시 국도를 이용하는데, 그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량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칠다. 그러니 슬럼프에 빠졌다고 해서 긴장까지 풀 수는 없다. 덤프트럭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선다. 겨드랑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은 이 모든 게 감당하기 힘든 위협으로 다가온다.
평인일주로에서 비로소 차량이 드문 해안 길로 접어든다. 바다에는 여전히 옅은 안개가 덮여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다. 먼 바다에 첩첩이 겹친 섬과 산들이 안개 속에서 뿌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며칠째 이런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 아침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는 통영의 하늘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지나치게 밝은 빛 때문에 감히 눈을 뜨고 바라다보기 힘들 정도다. 마음이 어둡고 무거운 탓인지 그 빛이 더욱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해안을 따라 달리면서 바다만큼이나 많은 하늘을 봤다. 얼핏 보면 그 바다가 그 바다 같고 하늘 또한 다 같은 하늘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통영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아마도 오늘의 날씨가 통영의 하늘을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겠지만, 주변 풍경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언덕을 오르면서도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바다보다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살면서 오늘처럼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본 날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날 하루,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한탄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는데 이곳 남해는 여전히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날씨는 포근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하늘이 맑고 푸른 데다, 날씨마저 따뜻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아침 내 마음이 견디기 힘들게 우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