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 고관 부인들의 일본나들이 '한일병탄'에 찬성한 친일 고관부인들이 일제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미스코시 백화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눈빛출판사
'한일병탄'을 전후해서 일제는 한국 고관부인들을 일본에 유람시키면서 선물공세를 쏟았다. 거기에 넘어가지 않은 고관부인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이 뿌린 선물과 은사금 공세에 대신도, 왕족도, 대부분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기개가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이제 '국치100주년'을 지내면서 웬만하면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새 출발해야겠다. 하지만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 일방으로 그들을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그들의 진정어린 사죄에 앞서 먼저 용서를 말하는 것은 민족자존의 문제다.
13도 창의군 군사장 나는 몇 해 전 한일병탄 당시 침략에 선봉장에 섰던 헌병대장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 후손의 한국병탄에 대한 솔직한 소견을 들은 바 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왕산 허위 선생은 13도 창의군 군사장으로 1908년 1월 서울 진공작전에서 패한 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유동리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8년 6월 일본 헌병들에게 포위 체포되어 경성(현, 서울) 헌병사령부에 구금되었다.
왕산 허위 선생은 평소 안중근 의사가 매우 존경하였던 인물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과정에서도 당당하게 왕산 허위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