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문 콩가파도 올레
김강임
자세를 낮추는 가파도 식물들수확을 앞두고 제법 여물이 통통해진 메주콩. 콩밭 끄트머리에 보일락 말락하는 가지런한 돌담. 가파도에서는 곡식들의 이파리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했을까.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은 겨울이면 청보리 씨앗을 뿌리고 긴 겨울의 여백을 채우는지도 모르겠다.
가파로 91번길, 가파초소 옆에 서 있으려니 상동마을 지붕이 푸름의 외로움을 달랜다. 초록과 연두색 물감을 차례대로 뿌려놓은 듯한 지평선을 너머,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가파도 올레를 걷다 보니 너무나 심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다. 심심할 때 불러보는 내 이름, 심심할 때 생각나는 사람들, 심심해서 보이는 꽃들, 그리고 바다 하늘, 나는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왜 심심한 섬으로 떠나려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큰옷짓물을 지나 개엄주리코지에 접어들면서야 시간이 궁금해졌다. 도심에서 1시간은 아주 많은 사건과 사고, 고뇌가 따른다. 하지만 심심한 섬에서의 1시간은 정지 상태였다. 그저 가파도 올레를 걷다보면 길이 모두 바다와 통하니 바다만 바라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