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출국 전 교육해외이주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출국 전 교육 모습
고기복
2005년부터 4년간 한국에서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을 했던 조셉(39)은 필리핀에서의 이주노동 과정 전반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서류를 모아두고 있었다. 그가 해외이주 노동을 떠나기 위해 준비했던 서류에는 출생증명서, 대학졸업장과 성적증명서, 고용허가제 출국 전 교육 수료증, 두 개의 재직증명서, 건강검진 확인서, 사회안전보험 가입증서 등이 있었고, 3년간 한국에서 일하고 난 후 귀국할 때와 다시 재고용되었을 때는 국민연금 납입확인, 상해, 귀국 비용 보험, 재고용확인서, 건강검진확인서 등의 서류를 챙겨두고 있었다.
5년 전 기록, 그것도 난생 처음 해외이주노동을 떠나기 위해 서류를 접수하고, 출국 전 교육을 받던 과정, 한국에서 4년간 일할 때의 서류들과 귀국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자료들과 기록은 꼼꼼한 회계 정리 자료를 보는 듯했다.
단순히 서류뿐 만이 아니었다. 교육 과정에서 들었던 내용들도 정리하고 있었는데, 메모에는 한국문화, 한국어, 공항 이용 방법, 돈(현금) 보관하는 법, 송금 방법과 저축 방법 등 자신이 받았던 교과목과 내용, 교육 시간을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들고 온 서류에는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 응시표와 성적표가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이주노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다시 이주노동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에게, 왜 재계약을 한 후 1년 만에 귀국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작년 6월에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연락이었는데."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던 조셉은 자신이 귀국 후 얼마 안 가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약속했던 귀국일자를 넘겨 출국하지 못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3년간 중지됐던 한국 송출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다.
조셉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가구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2년간은 고정급으로 80만원을 받았고, 삼 년째 되었을 때 9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105만원을 받으며, 매일 밤 2~4시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 만 4년을 일하고 귀국할 때 조셉은 420만 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아프다는데, 오늘 일 많이 하고 내일 병원 가라!조셉이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회사에서는 6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시켰고, 토요일도 8시간을 일을 해야 했다. 조셉이 했던 일은 가구에 붙이는 시트지 코팅작업이었는데, 본드와 화공약품, 발포제 등의 화학약품 냄새 때문에 두통과 눈 시려움, 복통 등이 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삼 년째부터는 두통과 복통이 만성이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두 번에 걸친 병원 치료 기간 중에도 약을 먹으며 계속 근무를 해야 했는데, 복통이 심하다고 할 때 공장장은 "오늘 일 많이 하고 내일 병원 가라"고 하여 병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아픈 배를 잡고 일을 해야 했다.
일의 특성상 화공약품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공장에 붙어있는 안전 관리 내용과 한국인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잘 따라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아프거나 지쳐서 쉬고 싶어도, 공장장과 반장이 방문을 두드리면 그냥 일해야 했다. 조셉은 외국사람 말고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힘들어서 종종 회사를 옮길 생각도 했지만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자 하며 참았다고 한다.
조셉을 힘들게 한 것은 계속된 일만이 아니었다.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는데, 겨울에는 히터를 가동했지만, 많이 추웠다. 여름에는 컨테이너 밖에 있는 화장실이 재래식이라 냄새가 심했고, 파리가 꼬일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다.
하지만 조셉은 일 많고, 일 힘든 것이나 생활환경이 열악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직장에서 나쁜 말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사장, 부장, 공장장은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쁜 말을 해 댔다.
회사에서는 외국인들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들로 여겼는지 말을 함부로 했고, 한국에 도착하고, 국내적응 교육을 받았던 연수원에서 여권을 가져간 사장은 어머니 건강 문제로 귀국할 때가 되어야 돌려주었다. 조셉은 4년 동안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해 본 적이 없다.
급여에 비해 근무시간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셉은 근로계약서와 실제 지급액, 특히 야간 수당 계산에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어떻게 대응할지를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가 일 년 반이 지났을 때, 우연하게 노동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고 동료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 항의하자, 그때부터 야근에 대해 계산을 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야근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 후 휴게 시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12시에 먹고, 부장, 공장장이 일어서면 커피 마실 시간도 없이 곧바로 일해야 했다. 점심 시간은 고작해야 10-15분이었고, 야근이 있을 때도 똑같았다.
해외이주노동만이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