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탄으로 마치 보름달이 뜬 것처럼 마을 앞 해수욕장이 환해졌다. 동시에 해안초소 부근에서 공포탄이 발사되었다.
송성영
실체가 없는 공포감. 나는 아주 오래 전, 그 실체가 없는 공포감에 치를 떨어야 했던 군 생활을 떠올렸다. 1984년 봄, 우리 부대원들은 사라지지도 않은 실탄을 찾아내야 했다. 그 실체가 없는 공포감으로 소대장들로부터 온갖 폭행과 기합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당시 나는 외무부장관을 비롯한 광주학살의 주역인 정호영(5·18 당시 특전사령관) 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등의 별 네 개짜리 군인들의 생활공간인 한남동 공관에서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남동 공관으로 차출되기 이전에는 경기도 포천의 6군단 헌병대에 근무했었다. 포천에서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에 단 두 군데의 한미 합동 검문소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축석검문소에 근무하다가 미군 헌병에게 45구경 권총을 들이댄 사건으로 부대에서 골칫거리로 낙인이 찍혔고(당시 그 소설과 같은 사건을
'누가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2003년 4월 19일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해 겨울 한남동 공관으로 차출 되었던 것이다.
12.12 사태(1979년 12월 12일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당시 총격전이 벌여졌던 한남동 공관은 본래 해병대가 경호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1983년 겨울, 헌병들로 전격 교체 되었던 것이었다.
교체 원인을 두고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일설에 의하면 '1983년 12월 부산 다대포 간첩 침투사건 당시 생포 간첩의 침투 목적은 요인암살. 그 무렵 별 네 개짜리들이 모여 있는 한남동 공관에 한 사내가 침입해 들어왔고 그를 잡지 못해 공관이 발칵 뒤집혀 공관을 경호 경비했던 해병대에 책임을 물어해체 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격투기 유단자를 비롯해 각종 운동주특기가 있는 헌병들을 차출해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군 간부들이 사라진 실탄을 찾으라고 한 이유한남동 공관에 차출된 헌병들은 나처럼 신원이 깨끗한 반면에 대부분 전에 있던 부대에서의 골칫거리, 사고뭉치들이었다. 이른바 창설부대가 그렇듯이 부대를 이끄는 간부들로서는 먼저 군기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었을 것이었기에 우리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가혹한 군기에 사로잡혀야 했다.
외출 외박은 물론이고 수개월 동안 부대 밖으로 서신 한통 전할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집합을 당해 몽둥이 찜질을 받아야 했다. 거기다가 1시간 근무하고 1시간 쉬는 막 교대 근무로 취침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욱 가혹한 것은 그 나마의 취침 시간을 쪼개 목봉 체조를 시켰고 거기다가 한 겨울에 알몸으로 얼음을 깨고 연못에 들어가 치를 떨어야 했다.
또 전부대원들을 대상으로 비상을 걸어 사라진 실탄을 찾아내라 요구했다. 관물대는 물론이고 부대 곳곳을 이 잡듯이 헤집어 놓았지만 사라진 실탄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따라 구타와 고문에 가까운 온갖 기합을 받아야 했지만 끝내 사라진 실탄은 찾지 못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깨어 있는 고참병들이 상급 부대에 탄원서를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놈이 그 놈이었다. 깨어 있는 고참병들은 마지막 수단을 강구했다. 그것은 소리 없는 반란이었다.
"간부들이 뭔가를 요구하면 '예. 아니오'로 대답해라. 어차피 맞게 될 것, 때리면 맞아라. 기합을 주면 받아라. 무조건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부대원들의 갑작스런 단체 행동에 소대장들이 눈에 불을 켜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부대원들의 무표정이 달라지지 않자 급수습에 나섰다. 간부들은 부대원들에게 회식자리를 마련해주며 회유책을 썼다. 하지만 깨어있는 고참병들의 지시로 모든 부대원들이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부대장을 비롯한 간부들 모두가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결국 그들은 깨어 있는 고참병들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참병들은 병사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그 결과 소대원들의 기합과 구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소리 없는 반란'을 주도했던 깨어 있는 고참병 두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전방으로 전출되었다.
'안보 회식자리' 걷어치우고 말없이 '투표'하자제대하던 날 회식자리에서 소대장들에게 물었다. 당시 정말로 실탄이 분실되었었는가 물었지만 대답을 회피했다. 깨어있는 고참병들은 알고 있었다. 분실된 실탄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대에서 군기를 잡기 위해 부러 실탄을 감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포감에 휩싸이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다. 다만 분노했을 뿐이다.
1984년 봄. 그 정체가 없는 실탄 분실 사건으로 공포감에 떨어야 했던 한남동 공관 경비대의 우리 부대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26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국민들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정체가 없는 '전쟁'이라는 공포감에 사로 잡혀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책임져야 할 인간들이 뻔뻔하게도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이라는 공포탄을 난사해 군기를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깨어있는 고참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실체가 없는 공포에 대항할 '소리 없는 반란'이 필요할 때다. 그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투표다. 그들이 차려놓은 '안보의 회식자리'를 걷어치우고 말없이 투표를 하는 일이다.
그날 밤. 공포탄 소리가 멈추자 집 앞 논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개굴 거리던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다시 요란해 졌다. 공포탄이 사라지자 평화로운 밤이 다시 찾아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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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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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다다당!" "이러다 진짜 전쟁나는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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