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집을 짓기에 앞서 격식없는 땅제를 지냈다.
송성영
화는 내 안의 욕심들이 분출되는 것
집짓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내가 그린 설계도면을 펼쳐놓고 아침부터 부부 싸움을 벌였습니다.
"민박집을 하는 건 더 이상 말리지 않겠는디 방이 너무 비좁잖어. 우리가 잘 방이면 몰라도 그런 방에 어떻게 손님들을 재울 수 있어.""좁지 않다니까 그러네. 방 두 칸은 있어야지.""그래두 그렇지, 그렇게 좁으면 여인숙이나 다름없지.""두 가족이 놀러 오거나 단체 손님들이 온다고 생각해봐. 남자여자 따로 쓸 수 있는 방 두 칸은 있어야지."건축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아내는 설계도면에 욕심을 덧붙여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 놀러 올 건디 뭘 그려, 방 부족하면 돈 안 받고 그냥 우리 방 내주면 되잖어.""그래도 민박집을 하려면 방 두 칸은 있어야 해.""욕심은 끝이 없는 겨. 우리 형편에 삼십 평짜리 집도 분에 넘쳐. 자꾸 욕심 부리다가는 탈난다니께 그러네.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작은 방 한 칸 더 늘리자는데 그게 뭐가 욕심이라고.""에이 몰라! 자꾸만 욕심 부리면 민박집이고 뭐고 그만둘 거니께 당신 혼자 하든 말든 맘대로 혀!"불안하게 지켜보던 눈치 빠른 큰 아이가 은근슬쩍 중재에 나섰습니다.
"아빠 땅 제사 지내러 언제 가는 겨.""며칠 있다가.""오늘 가자.""지금 밖에 비 오잖어.""고흥에는 비 안 올 겨, 오늘 가자. 엄마도 가고 싶지? 거봐 엄마도 간데잖어."화를 죽이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집을 나섰습니다. 고흥으로 향하는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 무렵 화가 풀렸습니다.
내 화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땅을 구하러 다니고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화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뭔가를 좀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못해 아내의 욕심에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이미 큰 욕심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최소한의 것으로 소박하게 살겠다는 더 큰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는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욕심들이 분출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화를 내고 나면 늘 그렇듯이 어금니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잇몸이 부어오릅니다. 잇몸이 부어오르면 육 고기를 먹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식탁은 점점 육식에서 씹기 편리한 음식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 끝에 문득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치 않는 치아를 통해 갓난아이 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난 아이 때는 씹을 필요가 없는 모유에 이유식을 먹고 점점 자라면서 먹기 쉬운 채식과 생선 등을 섭취하고 성성한 치아가 형성되면 육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 늙어 치아가 성치 않게 되면 다시 이유식 같은 씹기 좋고 소화기관에 부담이 적은 음식물을 섭취하게 됩니다. 그게 자연스런 현상일 것인데 아마도 나는 다 늙어서까지 육식을 놓지 않게 될지 모릅니다.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죽을 때까지 욕심껏 씹어 댈지도 모릅니다.
길한 날이라고 하니 기분은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