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3.
최종규
엊저녁 옆지기가 푸념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한 가운데, 낮나절에 홀로 자전거를 몰며 골목마실을 하며 밤나무를 보고 모과나무를 보고 호두나무를 보고 대추나무를 보며 감나무에다가 포도나무 들을 실컷 보았습니다. 제 사진기에는 이 온갖 열매나무들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하나같이 '골목집 담벼락 안쪽 마당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길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길가엔 흙이 없으니까요. 숭의3동과 송림2동에는 꽤 큰 고무다라이통에서 자라는 대추나무가 있기도 한데, 이런 데에 대추나무를 심어서 가꾸니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서글픕니다.
나무는 마땅히 너른 흙을 제 어머니밭으로 삼아 뿌리를 내려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니라 동무나무도 옆에서 자라고, 엄마나무나 아빠나무도 둘레에서 함께 자라야 할 테니까요. 키가 15미터쯤 넘는 버드나무가 고작 너비 0.5미터도 안 되는 흙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은행나무 또한 고작 0.5미터쯤 될까 말까 한 '살짝 구멍난' 아스팔트길 가운데에서 줄기를 올리고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말라죽지 않을 만큼 흙을 얻고, 겨우 숨을 틔울 만큼 땅을 얻은 셈이라고 할까요. 모조리 사람들한테 제자리를 빼앗기고 가까스로 고만큼 살아남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골목길이나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들 삶하고, 우리네 여느 사람들 삶은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살뜰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듯이, 사람이 사람다움을 알뜰히 추스르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거나 즐기고는 있는데, 날마다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채 배고픔이나 배곯음을 잊거나 모르는 채 살아가고는 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들 누구나 '목숨붙이'임을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자연을 잊으면 사람 또한 잊고, 자연을 잃으면 사람 또한 잃는다고 느낍니다. 자연을 버리는 터전에서는 사람 또한 버리고, 자연을 내치는 삶터에서는 사람 또한 버린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이니 경제발전지수니, 또 무슨무슨 국제행사이니 빌딩 높이이니 아파트 평수이니 연봉이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이니 하는 말마디와 숫자놀음은 어디에나 흘러넘치는데, 정작 사람들 목소리와 숨결과 살내음과 땀방울과 손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