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문학동네
장마비가 끝없이 내릴 듯하더니, 어제 하루는 말끔히 개면서 날이 몹시 무더웠습니다. 집안 창문을 모조리 열어 놓아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아쉬우나마 바람 한 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밤새 후덥지근한 가운데 모기는 법석을 떱니다.
이런 더운 날, 어른들은 차가운 보리술이나 얼음커피를 떠올릴 테고, 아이들은 차가운 얼음과자나 팥얼음물이나 콜라를 떠올릴까요. 더위를 이기거나 견디면서 내 마음밭 살찌울 책 하나 읽겠다고 나설 어른이란, 또 어린이란 얼마나 될까요.
.. 뻔뻔스럽게 국민을 탄압하는 악랄한 권력자와 정치가조차도 태연한 얼굴로 '숲은 소중하다', '동물을 보호하자', '생명을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독극물을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살인병기를 개발하고 제조하지요 … 혹시 인류는 어제도, 또 오늘도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달에 착륙하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 해도 환경 파괴와 전쟁을 멈추지 않는 한 인류는 '야만인'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 하에 국민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상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돌프에게 고한다》입니다 … 전쟁터에서는 어디로 도망치든 결국 공포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탈출구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점이 가장 참혹한 것입니다 … 수많은 나라가 저마다 '정의'를 내걸고 전쟁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국가의 수만큼, 혹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창한 '정의'의 속뜻은, 노인부터 순진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참한 살육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6, 18, 41, 53∼54쪽)아기 기저귀를 빠는 동안은 조금 시원합니다. 찬물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아기를 여러 차례 씻깁니다. 이제 기저귀를 떼야 하니 아랫도리를 벗기거나 속옷만 한 벌 입혀 놓는데, 오줌을 가리기 앞서까지는 온 방바닥이 오줌바다가 됩니다. 그만큼 기저귀 빨랫거리는 줄지만, 하루에 열 번 남짓 걸레질을 해야 합니다. 기저귀 열 번 빨기보다 걸레 열 번 빠는 일이 한결 수월합니다.
어른 두 사람이 아기 하나한테 매여 쩔쩔맨다고 할 텐데, 이렇게 쩔쩔매는 동안 엄마든 아빠든 제 마음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어질어질 해롱해롱 아슬아슬 간당간당입니다.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사이 어느새 밥때가 다가오고, 밥때가 다가와 밥을 차려 놓으면, 아기는 제가 숟갈질을 하겠다며 한손으로 꾹 움켜쥐고 밥을 다 헤집어 놓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떠먹여 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거나 엉금엉금 내뺍니다. 한 숟갈 먹일 때마다 몇 분씩 걸립니다. 이렇게 하루 온통 바쳐 씨름을 하며 지치는 엄마 아빠가 책을 펼치기란 대단히 힘든 노릇. 뒷간에서 똥을 눌 때, 이제 지쳐 잠자리에 드러누우며 잠깐 책을 집어들지만, 겨우 잠들었다 싶은 아기는 금세 다시 깨어나 응애응애거리니 이마저도 몇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농사일이나 공장일로 고단한 일꾼은 일꾼대로, 또 장사하기 벅찬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그리고 집에서 아기하고 씨름하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국땅 사람한테 책이란 머나먼 님, 아니 멀디먼 남입니다.
.. 겉보기에 평화로운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안락하게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에까지 뿌리내린 것입니다 … 일본의 군부와 정보기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상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정책을 편 것이겠지요. 우리 세대는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전쟁에 흠뻑 빠져 버린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써 온 것은, 군국주의가 남용한 영화의 효용을 거꾸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망울에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 (29∼30, 44∼45쪽)아이가 책을 읽자면 어버이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바르고 착하게 크자면 어버이가 바르고 착하게 커야 합니다.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자면 어버이가 튼튼하고 씩씩해야 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어버이를 따라 합니다.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따라 합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며 절구질 시늉을 하고, 숟갈질 시늉을 하고, 빨래 비빔질 시늉을 하며, 방바닥 걸레질 시늉을 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습니다. 어젯밤 오늘밤 그젯밤 …… 요 며칠 사이 우리 동네 사람이나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깊은밤에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제와 그끄제에는 경찰차가 와서 주정뱅이를 끌고 갔고, 어제는 '아마 그제나 그끄제 끌려갔구나 싶은' 주정뱅이가 'x같으면 신고해!' 하면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오늘밤이라기보다 새벽나절 너덧 시에는 어떤 젊은 사내와 계집이 술에 절은 소리로 악을 쓰며 싸웁니다. 저와 옆지기는 이 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깨는데, 아기도 이런 소리에 놀라서 깰까 걱정입니다. 조용할 때에는 그지없이 조용한 골목동네이지만, 동네사람이든 딴 곳 사람이든 술에 절디전 사람들이 때때로 부리는 못난 짓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옮을까 걱정입니다. 낮에는 동네 할매들이 우리 집 옆에 붙어 있는 정자에서 소주잔치를 으레 벌이며 갖은 욕을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도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우리 동네 다른 아이한테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주정뱅이 소리가 아닌, 동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제법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동네 곳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팔랑거리는 소리와, 바닷가에서 큰배가 뚜우 하고 울리는 소리, 그리고 빗소리 봄이 가는 소리 여름이 오는 소리 들을 받아들이고 느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아이 앞에서 엉뚱하거나 엉망진창인 소리가 되도록 덜 가닿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