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강국 푸에르토리코에서야근 근무 중인 소방대원들과 함께 보낸 멋진 밤
문종성
하루하루 설렘과 청춘의 비전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길 위의 숨을 빨아들일 때마다 나에게 깊은 묵상거리를 던져주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던 수많은 얘기들.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가라, 자고 가라, 정 안 되면 내 도네이션(donation)이라도 성의로 받아 달라'라며 하나라도 더 못 챙겨줘서 안달 난 미국인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망울로 다가와서는 카메라며 캠코더를 훔쳐 달아났던 멕시코인들과 그 아픔 못지 않게 세계 최고 피라미드 유적지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시에 미치도록 식탐을 자극했던 멕시코, 더러운 구정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니카라과 아이들,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졌으면서도 외부인을 피해 산 속에서 숨어 사는 인디오들이 있는 파나마.
한국인의 후예들을 만날 수 있어 더 마음이 동했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섬 쿠바, 진흙쿠키 때문에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위험한 나라 아이티, 단지 몇 명의 노인들만이 지키고 있어 더욱 쓸쓸해 보였던 그러나 가장 아름다웠던 푸에르토리코 한인 이민교회에서 올린 예배, 도로 옆으로 수백 킬로미터 정글이 뻗어 있는 미지의 아마존 수리남과 가이아나, 나그네에 대한 우정을 아끼지 않았던 너무나 멋진 콜롬비아 경찰들, 컴퓨터를 비롯한 전 재산을 싹 쓸어가 나를 울렸던 에콰도르의 미운 사람들, 그리고 이름 없는 곳들에 예정 없는 만남으로 남겨진 가슴 시린 추억들…….
내 여행에는 맛집이 없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현지인들과 동일하게 퍽퍽한 빵 한 조각에 설탕 가득 넣은 커피 한 잔이면 이미 서로 삶을 나누는 대화는 무르익고 있었다. 또 내 여행에는 호텔이 없었다. 역시나 감사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흔쾌히 초대해 준 현지인은 멋쩍은 미소를 내게 보냈다.
그러고는 오래도록 묵혀 둔 낡은 천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 침대에 펴주며 하룻밤 식구로 받아주었다. 혹은 중남미 어디서나 호의적이었던 소방서의 도미토리 침대 위에서 노곤한 두 다리를 쭉 펴면 세상 모든 근심을 털어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라도 격하게 사랑할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