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쿰 사막사막의 모래가 도로를 뒤덮었다.
김준희
간밤에 잠을 설쳤다. 마당 한가운데 크게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연신 들락거리는 트럭들 때문에 자다깨다를 반복한 것이다. 시간은 오전 7시. 지금도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나는 배낭을 꾸리고 양고기국으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오늘은 좀 조용한 곳에서 잘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로 사막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7일 동안 나는 샤워를 못했다. 상수도 시설이 변변치 않은 곳이라서 샤워는 엄두도 못낸다. 걷다보면 땀이 흐르고 때로는 모래먼지를 뒤집어 쓰기도 하는데, 제대로 씻지를 못하니 몸에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다.
한참 걷다보니까 모래가 잔뜩 침범한 도로가 나온다. 무엇이 이 모래들을 도로로 뛰쳐나오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강력한 돌개바람이라도 불어오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많은 모래가 도로를 점령하지는 못했을텐데. 사막이 스스로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사막을 뚫고 만든 포장도로를 다시 원래의 모래벌판으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다.
모래가 침범한 도로를 걸으며이 사막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7일 동안 사막을 바라보고 있자니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의 작가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는 사막을 가리켜서 '영원을 향해서 열려있는 거대한 창문'이라고 표현했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은 '무덤 속과 같은 고요함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래벌판뿐인 사막. 이 사막에서 세상의 일신교가 탄생했다.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아브라함은 사막을 방황한 끝에 가나안에 도착했고, 예수는 유다사막에서 40일 동안 도를 닦았다. 사막의 도시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다시 메카를 정복하면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왜 하필이면 사막으로 들어갔을까. 무슨 이유로 별다른 생명체도 없이 적막하기만 한 사막을 택했는지 의문이다.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을까. 어쩌면 이들은 사막 깊숙히 들어감으로써 태초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창조주를 접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산이나 바다가 아니라 아마 사막일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면, 그 빛의 열기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이 바로 사막일테니까.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마지막 영역이 사막일테니까. 그 안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흔히 히말라야를 '신들이 사는 곳'이라 표현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얼어붙은 산맥보다는 이 사막이 신에게는 더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신이라면 더위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보다는 광막한 지평선과 고요함이 있는 이 사막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사막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하기는커녕 점점 지쳐만 간다. 이곳에서 신을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 신이시여! 도대체 어쩌자고 사막을 만들었나이까?"쉬면서 따뜻해진 물을 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