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94) 비현실적

― ‘비현실적인 대답’, ‘비현실적이고 낡은 사상’ 다듬기

등록 2008.08.21 20:37수정 2008.08.2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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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비현실적인 대답

 

.. 아무 데나 발길 닿는 대로 와서 보니 춘천이더라고, 다소 비현실적인 대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  <마흔에 길을 나서다>(공선옥, 월간 말,2003) 240쪽

 

 ‘다소(多少)’는 ‘적잖이’나 ‘저으기’로 손볼 수 있습니다(‘저으기’는 북녘말이라고 합니다만, 남녘말이느니 북녘말이느니를 넘어서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라고 느낍니다. 몇몇 고장에서 쓰는 말이라고 해서 표준말이 아니라고 하기보다는, ‘적이’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쓰는 고장말 가운데 하나로, 느낌을 살려 주는 우리 말 하나로 바라보아야 알맞다고 생각해요). “대답을 줄 수밖에”는 “대답을 할 수밖에”로 다듬어 줍니다.

 

 ┌ 비현실적 : x

 ├ 비현실 : x

 │

 ├ 비현실적인 대답

 │→ 엉뚱한 대답

 │→ 생뚱맞은 대답

 │→ 엉터리 대답

 │→ 말도 안 되는 대답

 │→ 터무니없는 대답

 └ …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까 ‘비현실’일까요.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비현실’일까요. 현실을 벗어났다는 뜻으로 쓰였을 ‘비현실’이라 한다면, “현실을 벗어난”이라 말할 때가 가장 알맞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비현실적인 꿈을 꾸다

 │

 │→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꾸다

 │→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다

 │→ 꿈도 야무지다

 └ …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요즘 세상은 꿈을 꾸는 사람은 굶어죽으라고 몰아세웁니다. 꿈을 꾸려면, 어찌 되었든 먹고살 터전이 넉넉히 마련된 다음에 꾸라고 합니다. 먹고살 터전이란 다름아닌 돈이겠지요. 돈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꿈 하나 꾸려고 해도, 먼저 돈부터 갖춘 다음 꾸라고 한다면, 돈을 벗어난 꿈을 제대로 꿀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말다운 말을 익힐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꿈도 터무니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말다운 말을 익히자면, 누구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 된 사람이 세상을 돈값이 아닌 사람값으로, 아니 사람값도 아니라 사람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람마음으로 바라보는 매무새는 어버이 다음으로 마을사람들이, 아이들이 다닐 학교 교사들이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갖출 마음가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 삶터를 가꾸며 자연 삶터를 두루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제 뱃속 채우기가 아니라 내남없이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가꾸기로 나아갈 줄 아는 몸짓, 이런 여러 가지를 기꺼이 갖추어야 비로소 우리 모두 깨끗하고 살갑고 올바르며 알뜰하다고 할 만한 말과 글을 즐길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 현실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일지,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꿈만 꾸려는 셈인지, 현실을 떠난 꿈바라기일 뿐인지 모릅니다. 저는 제 현실을 산다지만, 제가 사는 현실은 지금 세상 사람들한테는 한갓 어설픈 꿈나라로만 보일 수 있겠지요. 그래도 사람들 누구나 자기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아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이 언제 어디서나 사랑스럽고 살가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꿉니다.

 

ㄴ. 비현실적이고 낡은 사상

 

.. 문장과 문구나 외우는 양반들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낡은 사상인지, 그리고 백성의 삶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사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  <의산문답>(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2006) 44쪽

 

 “문장(文章)과 문구(文句)나 외우는 양반들의 생각”은 “글이나 외우는 양반들 생각”으로 손질합니다. ‘사상(思想)’은 ‘생각’으로 손보고, “백성의 삶”은 “백성들 삶”으로 손보며, “그들만의 사상이라는 것을”은 “그들만이 품는 생각임을”로 손봅니다. “싶었던 것이다”는 “싶었을 뿐이다”나 “싶었다”로 다듬습니다.

 

 ┌ 비현실적이고 낡은 사상인지

 │

 │→ 현실을 모르는 낡은 생각인지

 │→ 세상과 동떨어진 낡은 생각인지

 │→ 세상을 벗어난 낡은 생각인지

 │→ 세상과 어긋난 낡은 생각인지

 └ …

 

 현실을 모르는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은 현실과 벗어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라고 해서 ‘얄궂거나 나쁘거나 비뚤어진’ 생각이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 그릇된 쪽으로 흐르고’ 있다면, 현실을 모르는 생각은 오히려 밝은 생각이거나 올바른 생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오는 ‘비현실적’은 “현실을 모르는”이나 “세상과 어긋난”으로 풀어냅니다. 비록 우리 세상이 어디로 흐르려는지 종잡을 수 없을 뿐더러 까마득하기는 하지만, 보기글에서는 보기글대로 알맞게 적어야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21 20:37ⓒ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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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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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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