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골마루한쪽에는 조금 쌓여 있고, 다른 곳에는 차곡차곡 꽂힌 책들. 이 책들 가운데 우리한테 어떤 책이 반갑게 다가올까요.
최종규
그나저나, 예전 문교부, 지금 교육부(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또 뭔가로 바뀐 듯한데 모르겠습니다. 그냥 교육부라고 하면 될 터인데 무슨 꼬리말을 그리도 길게 달려고들 하는지. 그렇게 이름을 길게 늘여뜨린다고 교육 정책을 더 잘 펼칠 수 있지 않는데 말입지요)에서는 이러한 낱말꾸러미를 얼마나 꾸준히 엮어내어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3) 우리가 배우는 역사란 무엇일까《宇根 豊,日鷹一雅,赤松富仁-田の蟲圖鑑》(農文協,1989)은 논에서 살아가는 나쁜벌레와 좋은벌레와 그저 그런 벌레, 세 가지를 사진을 섞어서 한살이를 보여주는 도감입니다. 왜 생기고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퍼지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는데, 참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도감은 ‘용인자연농원 자료실’에 있다가 흘러나왔습니다. 책 뒤쪽에 대출표가 고스란히 붙어 있는데 대출실적인 0. 아무래도 아무도 빌려 읽지 않아서 자료실에서 버렸구나 싶어요. 그곳 용인자연농원 자료실에서 이 책을 기꺼이 사 주고, 또 빌려 읽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버려 주었기에, 저는 한국땅에서 이처럼 좋은 나라밖 도감 하나를 고맙게 얻습니다.
《케이트 밀레트/정의숙,조정호-성의 정치학 (하)》(현대사상사,1976)가 보입니다. 다른 헌책방에 나들이를 갔더니 어느 여대생이 “아주머니, 여기 《성의 정치학》이라는 책 있어요?” 하고 여쭈던데, 《성의 정치학》은 나라밖에서 대단히 이름나고 많이 팔리는 책이라지만, 나라안에서는 이름은 제법 드높아도 잘 안 팔리는 책입니다. 인터넷새책방에서 찾아보기를 해 보면, 책이 뜨기는 하나 상권만 있고 하권은 절판이라고 하는데, 상권을 주문해도 집으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일. ‘현대사상사’라는 곳은 1999년에 마지막 책을 펴냈다고 하나, 이 책도 품절이고, 이 책을 빼면 1995년에 나온 책이 가장 요사이에 펴낸 책입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 이만한 ‘고전’인 《성의 정치학》쯤 된다면, 다른 출판사에서라도, 이를테면 ‘또하나의문화’ 같은 곳에서라도 손바닥책으로 되살려 주면 좋을 텐데, 대학교에서 여성학 교재로 곧잘 쓰는 듯하면서도 좀처럼 이 책을 되살려 주려는 낌새는 없습니다. 그저 학교 앞 복사집에서 슥 복사해서 보고만 있을는지.
.. 이것은 “육체의 부활”, “본성적인 사랑” 등의 용어에 의하여 선전되어 온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남성 지배권을 국제적이고 다분히 제도화된 신비스런 종교로 변모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압적인 형태로서의 성의 정치이며, 로오렌스는 가장 유능하고 정열적인 성의 정치가이다 ……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의 지배권이 가장 현실적이고 의논의 여지가 없는 기초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여성에게 제시하는 것이 발기이다. 근면한 학생 코니는 교리문답에 성실하게 대답하듯, “남자들이 왜 그렇게 뻐기는지 이제야 알겠어요.”라고 말한다. 경건한 신자의 황홀감, 사랑을 하는 여자의 환희와 희열의 풍자적인 감정으로 그녀는 신격화한 음경을 무섭고도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인 현상 앞에 그녀가 위협을 당했다는 로오렌스의 약간 새디스트적인 주장은 여성의 종래의 매저키즘에 대한 또 하나의 입증으로 하려는 것 같다 .. (458쪽)《성의 정치학》은 여성학만이 아닌 문학으로도, 사회학으로도, 인류학으로도, 정치학으로도, 또 문화학으로도 읽힐 만한 책이 아니냐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