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보리밥집 들머리 낙안읍성 들머리에 가면 남도식 보리밥 전문점이 있다
이종찬
오뉴월 보릿고개 철이 다가오면서 보리밥이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고 있다. 보리밥은 예로부터 가난한 서민음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세상에는 보리밥이 별미가 되어 쌀밥과 같은, 혹은 쌀밥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식탁 위에 오르고 있으니, 예전의 꺼끌꺼끌하고 먹기 싫었던 그런 흉한 보리밥이 아니다.
1960~1970년대.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마을 사람들은 끼니 때마다 시커먼 보리밥을 식탁 위에 올렸다. 간혹 재수가 좋은 날에는 그 보리밥 속에 하얀 쌀알이 서너 개 섞여 있기도 했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늘상 먹는 보리밥은 시커먼 꽁보리밥 그 자체였다. 게다가 밑반찬도 거의 없었다. 간장, 된장 한 종지와 김치, 나물 두어 가지가 모두였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보리밥을 먹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침저녁에는 대부분 보리밥에 된장국물과 묵은지, 나물 두어 가지, 고추장을 넣고 쓰윽쓱 비벼먹었다. 하지만 점심 때에는 금방 떠온 시원한 우물물에 보리밥을 말았다. 그리고 물에 만 보리밥을 한 입 가득 떠 넣은 뒤 매콤한 풋고추를 된장에 푸욱 찍어 우두둑 우두둑 씹어 먹었다.
갖가지 나물 예닐곱 가지에 달걀프라이까지 얹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쓰윽쓱 비벼먹는 요즈음의 쫄깃한 보리밥,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맛이 솔솔 배어나는 별미 보리밥이 아니었다 그 말이다. 게다가 그때에는 식량도 아끼고 보리밥의 꺼칠꺼칠한 맛을 없애기 위해 미리 보리를 한 번 삶은 뒤 다시 밥을 했다. 말 그대로 보리쌀알이 퉁퉁 불어터진 그런 맛없는 보리밥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