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관, 세자관 터로 알려진 심양 아동도서관. 최근엔 다른 곳이라는 설이 있다.
이정근
"조선과 대 청국은 이미 한나라가 되었으니 모든 일을 사실대로 알려 주시오. 한 가지 일을 신뢰하면 모든 일을 믿을 수 있고 한 가지 일을 불신하면 모든 일을 믿을 수 없소. 조선이 우리나라를 정성으로 대하면 어찌 세자께서 여기에 오래 머무르시겠습니까?"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는 용골대의 태도로 보아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불안했다.
"이르다 말씀입니까. 정성을 다하여 대하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한다는 나라가 우리 몰래 명나라에 사신을 보낸단 말이오?"
"……"
소현은 할 말을 잃었다. 본국에서 명나라에 파견했던 동지사 김육을 통원보에서 비밀리에 만난 무재(武宰) 박종일의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청나라가 어떻게 알았을까? 당혹스러웠다.
"귀국이 명나라에 보냈던 사신이 돌아왔다 하니 틀림없이 칙서를 가져왔을 것이오. 그 칙서를 열어보지 말고 봉한 채로 우리에게 보내주시오."
난감한 요구였다.
"전에 사신이 돌아올 때는 칙서를 받아오기도 하고 받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칙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소만 있다면 무엇이 어려워 보내지 않겠소? 다만 칙서를 받아왔다면 열어보았을 것이니 봉한 채로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오.""이미 열어 보았다 해도 원본을 보내오도록 하시오."
"돌아가는 사신 편에 알리도록 하겠소."
청나라의 첩보망은 조밀했다. 부역하는 조선인도 있었고 조선 조정에 반감을 품고 가담하는 조선인도 많았다. 특히 변방 수령들의 학정에 시달린 조선인들이 월경하여 청나라의 정보 수집에 적극 협조했다.
청나라는 사신을 체포하지 않고 압박수단으로 활용했다청나라는 동지사 김육과 서장관 이만영이 청나라 사람 옷으로 변장하고 청나라를 통과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신 일행을 체포하지 않고 미행했다. 압록강을 넘겨준 청나라는 동지사 문제를 조선 임금과 심양에 억류되어 있는 세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세자 저하. 주위를 물리쳐 주시오."
용골대가 요구했다.
"모두들 나가 있으시오."
시종 신하들을 물리치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선 국왕이 나와 여기에 있는 마부대에게 백금을 보내 왔소. 미천한 장수에게 과분한 선물을 보내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이오. 그러나 사사로이 받을 수 없는 선물이기에 황제께 보고 드렸더니 '사람은 성심으로 사귀어야지 웬 뇌물인가?'라 하시면서 대노하셨소."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소현은 속내를 감추었다. 하지만 소현의 목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역관 정명수와 김돌시에게도 선물을 보내온 모양인데 뇌물에 대한 별도의 자문이 있을 것이오."
세자관에 비상이 걸렸다. 선물을 뇌물로 보고 있다는 황제의 시각은 태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다급한 소현은 박노를 예부에 급파했다. 우리나라의 예조와 같은 기능의 예부에서 세자관 관원을 맞이한 사람은 범문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