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잇문.평소 여자들이 드나들던 사잇문이지만 심양에서 돌아온 며느리들에게는 열리지 않은 문이었다. 연경당 우신문.
이정근
환향녀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한 것이다. 환향녀 문제를 인륜 이전에 인간의 원초적인 정으로 접근하려던 최명길의 복안은 설 땅을 잃었다. 궁지에 몰린 최명길을 인조가 조용히 불렀다.
"쇄환녀 문제는 부부 간의 사생활이니 국가에서 개입해서는 아니 될 것 같다. 물 흐르듯이 놔두면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경이 여기 있으면 소란스러울 것 같으니 청국에 다녀오도록 하라.""청나라라 말씀하셨습니까?""그렇다. 청나라가 이번에 포로를 돌려보내주었으니 고맙다는 내 뜻을 황제에게 전하라.""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경이 청국을 방문하면 저들은 군사징발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사정을 잘 설명하여 군대가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하라.""명심하겠습니다."삼전도 항복 이후, 인조의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것이 강화조약 넷째 조항이었다.
'청이 명나라를 정벌할 때 조선은 기일을 어기지 않고 원군을 파견할 것.'총 11개 조항 중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조약이었다. 240여 년 간 아버지의 나라로 모셨던 명나라를 어떻게 공격한단 말인가? 명나라는 천자가 있는 아버지의 나라가 아닌가. 어떻게 아들이 칼을 들고 아버지 나라를 친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현실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청나라에 밀리는 명나라가 기사회생하기를 고대했지만 명나라에서 들려온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망국의 길로 접어든 명나라 소식은 절망이었다며칠 전 비밀리에 명나라에 파견했던 동지사 김육과 서장관 이만영이 돌아왔다. 그들은 청나라 관리들의 눈을 피해 우회로를 택해 북경을 다녀오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고 죽을 고비도 넘겼다.
"천조(天朝)에서는 우리나라의 일을 어떻게 여기던가?""천조에서 우리나라의 사정을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황제가 만 리 밖을 밝게 보고 있으니 천은(天恩)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진 도독(都督)은 어찌하여 가도를 구하지 않는가?""진 도독의 군사는 1만여 명에 지나지 않으니 구하지 못할 형세입니다.""천조의 치란(治亂)은 어떠한가?""조사(朝士)의 탐욕이 날로 심해지고 환관의 교만방자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또한 각처에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김육의 보고는 인조를 절망케 했다.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나라 명나라에 망국의 조짐이 보였던 것이다. 최명길을 더 가까이 부른 인조는 나직이 말했다.
"저들이 경을 대우하는 것은 필시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니 경은 잘 해야 한다. 또 세자와 대군은 이별한 지 여러 달이 되었으므로 부자의 정이 간절할 뿐더러 대상(大祥)이 다가왔으니 내보내 달라는 뜻을 간절히 말해야 하겠다.""소신의 청(請)보다도 전하의 자문이 옳을 듯 하옵니다.""자문을 따로 하나 만들어 줄 터이니 세자와 대군을 꼭 데리고 나오도록 하라.""지금이 그 시기입니다마는 저들은 반드시 빈궁도 한꺼번에 내보내지는 않을 듯합니다.""이번 자문에는 빈궁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원군 철회와 세자 환국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최명길이 심양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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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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