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탑 표지석.남탑은 심양시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이정근
"그러니까 얼마냐 말이오?"조선인 처자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사람이 마음이 급해졌다. 공포에 떨고 있는 처자의 검은 눈동자가 역설적이게도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저고리 섶을 치밀고 올라와 있는 젖무덤이 눈을 현혹했다. 치마 사이로 슬쩍 보이는 피부로 보아 속살이 희고 고울 것 같았다. 이 모습을 간파한 배불뚝이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백 삼십 냥 받아야 하는데 꼭 사시려면 백 이십 냥만 내시라." 노련한 장사꾼이다. 매수자의 태도로 보아 백 냥은 너끈히 받을 수 있다고 간파한 배불뚝이는 20냥을 얹어서 부른 것이다. 포로는 정찰이 없다. 부르는 게 값이고 거래되는 것이 가격이다.
"백열 냥만 하자 해."몸이 후끈 단 매수자가 엽전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열 냥은 거저다. 뿐만 아니라 80냥에 산 포로를 하룻밤 사이에 재미도 보고 30냥을 벌게 되었으니 배불뚝이 입이 째졌다. 로또가 따로 없다. 대박이다. 당시 청나라의 물가는 소 1마리 값이 15냥이었다. 그렇지만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매수자가 사가는 입장에서 좋은 물건 싸게 샀다는 기분이 들어야 발걸음이 가볍다는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엽전 꾸러미를 슬며시 끌어당겨 자신의 돈궤에 넣고 포로의 손목에 감겨있던 새끼줄을 풀고 있었다. 처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까지 오고간 얘기가 자신을 두고 오고간 말이며 엽전 꾸러미가 자신의 댓가란 말인가?
“엄마!”외마디 소리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여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손발이 떨리고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넋이 나간 여인은 본능적으로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이 때였다. 배불뚝이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얼굴에 채찍을 맞은 여인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 사이 억샌 팔이 처자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머니!"끌려가는 처자가 울부짖었다. 피투성이 얼굴을 감싸 쥔 여인은 손가락 사이로 멀어져 가는 딸아이를 바라볼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끌려가며 자꾸만 뒤돌아보던 처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현세자는 시장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었다.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다리 뻗고 한 번 울어 볼만한 땅 심양에서 조선의 왕세자는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통곡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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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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