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서문. 죄인은 남문을 이용할 수 없으니 서문을 통과하라는 청나라의 요구로 인조가 나왔던 문이다. 항복하러 나오던 그 때도 이렇게 눈이 쌓여 있었다. 현재는 보수공사중이다.
이정근
세자빈과 왕실 여인이 외간 남자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당사자보다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예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사대부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는 일이었다. 차라리 자신들이 삼백 배, 삼천 배를 하고 싶었다. 조선 남정네들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항복하러 남한산성을 나서며 정축하성(丁丑下城)이라 자위하며 내려왔던 사람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자들의 목을 조이던 남자들이다. '남녀유별'이라고 여자들을 집안에 가두어두던 사대부들이다. '남녀는 내외해야 한다'고 여자가 문밖 출입할 때는 너울을 쓰게 했던 사내들이다. 그러한 자신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여 세자빈과 궁실 여인이 외간 남자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나라를 지키지도 못한 사내들 "주제파악을 하라"삼배구고두를 행한 임금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산천초목을 떨게 했던 위엄은 간 곳이 없다. 나라를 바로잡겠다(仁祖反正)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기상은 찾을 길이 없다. 청나라의 지시로 곤룡포를 벗으라면 벗고 여진족 옷을 입으라면 입고 있는 모습이 허수아비 같았다. 밤새워 만들어 입은 남염의(藍染衣) 자락이 북풍에 펄럭였다.
"세자빈으로 하여금 절을 올리라 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소. 거두어 주시오."
김신국이 상기된 얼굴로 항의했다. 하지만 그것은 간청이었다.
"조선이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니 황제에게 예를 올리라 하는 것이오."
"우리나라 법도에는 없는 일이오."
"하라면 하는 것이지 왜 그리 말이 많소? 귀국은 신하의 나라라는 것을 잊었소?"
용골대가 눈알을 부라렸다.
"강화조약에 없는 일을 어찌 행하라 하시오?"
김신국이 배수의 진을 쳤다. 맞는 말이다. 강화협의에는 없었던 얘기다. 앞길이 아득했다. 이렇게 밀리다 보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요구할지 모른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는데 청나라 사람들처럼 머리를 깎으라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이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