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브사막의 붉은 모래언덕
김성호
거역할 수 없는 사막의 마력나는 아프리카 여행을 오기 전부터 붉은 모래언덕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사막, 붉은 모래, 그리고 모래언덕, 붉게 타오르는 해돋이와 서서히 지는 해넘이, 인적이 없는 사막에 미라처럼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오아시스….
뜨거운 태양의 정열이 나를 오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외로움이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음이 손짓하는 것 같기도 한데, 뿌리치지 못하고 그 마력에 이끌려 간다. 사막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이상하게 사막의 유혹을 뿌릴 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오늘 사막으로 간다. 사막이 죽음의 키스로 가는 입구라 해도 왠지 가지 않고서는 허전할 것 같다. 붉은 모래언덕이 부르는 나미브 사막의 소수스플라이(소수스블레이)로 가는 날이다. 나미브사막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나미비아와 남아공의 국경인 오렌지 강에서부터 북쪽으로 앙골라 남부까지 뻗치는 길이 1600km, 최대 폭 160km나 되는 해안사막이다. 나미비아(Namibia)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나미브(Namib) 사막에서 따온 것이다. 나미브는 나마족의 언어로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황량한 지역’을 말한다. 나미브 사막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하나인 나미브-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사파리 회사의 차량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빨리 사막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에 직접 걸어서 사파리 회사로 갔다. 사파리 차량은 다른 여행객들을 싣고 오느라 내가 도착하고서도 30분 뒤에 왔다. 내가 가는 사막 투어는 빈트후크에서 출발해 소수스플라이 모래언덕을 본 뒤 다시 돌아오는 2박 3일짜리 투어다.
사파리 차량인 봉고버스에는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하면 7명이 간다. 애초 8명이 예약했으나 영국 비행기 테러음모사건으로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비행기 운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영국인 여행객 한명이 오지 못했다. 여행객의 국적 구성이 신기하다. 6명은 모두 미국 국적이고, 아시아는 나 혼자다. 미국 국적이라고 해도 인종별 구성은 다양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두 명이나 탔다. 30대 후반의 미국 남자 의사와 일본계 부인, 컴퓨터 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백인 연인들, 엔지니어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백인 남자, 그리고 30대 초반의 재미교포다.
재미교포는 뉴욕에서 공인회계사를 하는 젊은이인데, 다니던 공인회계사무소를 그만두고 유럽을 거쳐 두 달째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면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러 간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젊은이는 “이번 여행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커졌다”며 “미국에 직장을 잡고 미국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유럽과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일자리를 찾아 볼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여행은 이렇듯 시야를 넓게 만들어 준다.
에보니 나무 아래 사막 텐트에서 잠을 자다빈트후크 시내를 벗어나자 황량한 들판과 누렇게 죽은 작은 나무만이 있다. 작은 바위산들이 가끔 나타날 뿐이다. 전형적인 반사막지대다. 몽골 고비사막의 초입과 같다. 동물이나 가축을 찾아 볼 수 없다. 한참을 달리니 개코원숭이 한 마리가 길가에 있다 차 소리에 놀라 달아난다. 검은 색깔의 원숭이다. 사막의 햇볕에 적응하다보니 색깔도 검게 변했나보다. 숲속의 기름기가 흐르는 탄자니아나 짐바브웨의 회색 개코원숭이와 다르다. 먹을 것도 없고, 햇볕을 피할 그늘도 없는 나미비아 사막의 검은 개코원숭이가 불쌍해 보인다.
차량은 코마스 호히란트 산맥을 넘어 감스버그 패스 고개 길을 지난다. 3시간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나우클루프트(Naukluft) 산 근처의 나우클루프트 뷰(View)라는 곳. 이곳은 우리가 묵는 나무숲 텐트 캠프이다. 자갈과 바위 사막에 커다란 에보니 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나무 밑에 텐트를 설치해 놓았다. 텐트는 깨끗하고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두 명이 한 텐트에 자는데, 나는 미국교포와 짝이 되었다.
오후에는 근처 작은 강으로 갔다. 20여분 달리니 놀랍게도 작은 강이 나타났다. 찰스라는 운전사 겸 안내자는 “차우샤프 강(Tsauchab River)으로 작은 물줄기들이 바위산 밑에서 흘러나와 이곳에서 모아져 소수스플라이 쪽으로 흘러가다 모래사막 밑으로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강이라고 해야 우리네 개울가 정도지만, 풀한 포기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막에서 물이 흐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강을 따라 수백 년은 될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검은 개코원숭이 한 마리가 물을 마시다 인기척에 숲속으로 달아난다.
강 주변을 따라 산책코스가 있는데, ‘마운틴 얼룩말 오솔길(Mountain Zebra Trail)’이다. 마운틴 얼룩말이 많이 산다고 한다. 안내자 찰스는 “마운틴 얼룩말은 주로 나미비아의 산악지대에 사는 데, 다른 초원에 사는 얼룩말보다 색깔이 엷고 검은 줄무늬가 하얀색 보다 가늘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찰스는 마운틴 얼룩말의 똥이 물가에 있다고 가리킨다. 물가에는 여러 동물들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아침에 물을 마시고 산악지대로 들어간 것이다.
강물에는 작은 고기들도 살고, 올챙이 같은 물고기도 헤엄친다. 구슬피 우는 새도 있다. “끄~억, 꾸~억”하는 소리가 참 슬프다. 황량한 사막에서 친구가 없는 새의 울음소리다. 강 주변의 바위들은 오랜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듯 마치 벽돌조각을 쌓아 놓은 듯 4각형으로 쪼개져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단층들이 화산이나 지각변동으로 겉으로 드러났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스프링복 3마리가 마른 풀을 뜯고 있다. 사막의 자갈 틈새에서 자라는 거친 풀을 먹고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나미비아 지폐에도 스프링복이 그려져 있다. 나미비아 지폐의 특징은 앞면에는 모두 ‘추장’ 헨드릭 비트부이가 나오지만, 뒷면에는 모두 동물이 나온다. 나미비아의 10달러 지폐에는 스프링복이 나오고, 20달러에는 하테비스트, 50달러에는 쿠두, 가장 고액권인 100달러에는 나미비아의 상징동물인 오릭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