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열정만으로 성공할 순 없지만 젊음과 열정이 있기에 포기할 수는 없다.
문종성
난 젊습니다. 젊음이란 말에 편안함이란 단어를 연결시키지 말자고 늘 다짐하던 나입니다. 게다가 고무적인 점은 구제불능 낙천주의와 함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모험심이 이미 사막 한 가운데 긍정의 우물을 파 놓았다는 것입니다. 황금대지 위에 생명의 숨결을 토해내는 사막 라이딩. 그 짜릿한 환희를 생각하노라니 고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설렘만큼이나 입이 바싹바싹 마릅니다. 그러니 어찌 사막을 앞에 두고 양반걸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망상과 로망을 가지고 진입한 애리조나 사막. 그러나 상큼하게 시작된 페달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행의 수련으로 변모합니다. 훈풍은 열풍으로 바뀌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인간의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듯 양기 가득한 저주를 뿜어냅니다. 오로지 한 길로만 가는 상황에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빠르게 빠져 나가는 것의 의의지, 나 참.'작가 삐에르 쌍소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느리게 사는 법>을 읽는다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울화통이 터질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지극히 물리적인 애정이 필요합니다. '사랑해'라는 말로 다가오는 친구보다 물, 얼음, 수박, 아이스크림 따위를 던져주는 원수가 더 눈에 밟힐 게 뻔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한참을 달려도 한 쪽만 쌍꺼풀 진 바람기 그득한 눈엔 도무지 보이는 게 없습니다. 주유소(Gas station)도 없고, 레스토랑도 없습니다. 사람의 냄새도 들꽃의 향기도 모두 증발되어 버린 이곳은 고요한 악마의 안식처입니다. 그리고 난 천사라고 매우 고의적인 착각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결코 이곳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지 말입니다.
사람이 극도로 몰리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모든 걸 해탈하고 유유자적이 되는가 봅니다. 도무지 사람의 흔적에 닿을 낌새가 보이지 않자 오후 느지막이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옵니다. 애마 로페카(Ropeca)와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길을 헤치기 위함입니다. 해거름이 되면서 날씨가 겨우 한 풀 꺾여 이젠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바람에 노래나 실어 보낼까 청승맞게 흥얼거려 봅니다. 콜라 중독 때문에 목이 관리되지 않아 삑소리가 나지만 인상만큼은 톱가수 못지않습니다.
'하늘이여 나를 도와 줘 그렇게 울고 있지 말고 내 님이 있는 곳 너는 쉽게 알 수 있잖아.'아, 남이라도 좋으니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배도 슬슬 고파오고, 무슨 배짱으로 음식은 또 그리 부실하게 쌌는지 후회가 됩니다. 별 수 없이 물배를 채우고 또 나그네마냥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그래도 이런 착오와 경험들이 축적되어 나중에 아프리카 사막에 도전하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