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김종성
'프랑스가 정말로 예술의 나라 맞아?' '하기는 이런 파괴도 예술 창작을 위한 창조적 파괴였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라며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다가, 외규장각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가 아니라 혹 책벌레들의 나라가 아닐까?'
조선 제22대 군주인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들을 보관할 목적으로 1781년에 설치한 외규장각은 한성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해놓은 의궤(儀軌)를 비롯해서 천여 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병인양요 때에 고려궁지에 들이닥친 프랑스군이 이곳에서 345권의 책을 약탈해갔다. 나머지 책들은 그들의 방화에 의해서 모조리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에 약탈해간 도서 중에서 279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중에는 필사본이 없는 유일본이 63권이나 있다고 한다.
고려궁지가 불타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그 귀중한 책들만 훔쳐간 것을 보면, 프랑스인들은 예술이 아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한국정부가 그토록 강력하게 반환요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그들은 분명히 '하버드의 공부벌레들' 못지않은 책벌레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이 예술의 나라라며 치켜세워서 그렇지, 사실 프랑스인들도 제국주의침략 시절에 오늘날의 미국 부시 행정부 못지않게 만행을 저질렀다. 샹송과 에펠탑에 취한 나머지, 한국인들이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의 죄악을 잠시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어느 역사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에도 그 나름대로 항변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자신들은 합법적 방법으로 한국 고서들을 확보했다고 말이다.
물론 한국 고서들이 프랑스 함대로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까지 들어가는 과정은 합법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책이 외규장각에서 프랑스 함대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은 분명 불법적인 것이었다.
절도범이 훔친 재물을 범인의 아들이 갖고 있다면, 그 아들 역시 형법상의 장물취득죄 혹은 장물보관죄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 절도범인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돈 주고 샀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듣고 그냥 돌아설 경찰관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물'이 아직 프랑스 영역 안에 있는 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도서 획득과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을 보더라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한국측에게 '장물'을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 하기는 한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더 강한 나라였다면, 복잡한 법리를 운운할 필요도 없이 프랑스가 이미 오래 전에 고서들을 기꺼이 반환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