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뒤로 벼꽃을 한창 피우는 푸른 논이 펼쳐져 있다김민수
며칠째 이어지는 열대야에 뒤척이며 어린 시절의 여름다움을 잃어버린 여름이 안타깝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리 뜨거운 여름이라도 절기상으로 입추가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중복이나 말복에도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에 이불자락을 끌어당기곤 했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 여름이 남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남아 있을 그 여름, 그러나 WTO, IMF, 한미FTA가 휩쓸고 간 농촌은 마치 제초제에 뿌리가 말라가는 강아지풀처럼 힘겹기만 하다. 여전히 그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여름 들판, 도시건 시골이건 가리지 않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옛날 구황식물이기도 했던 강아지풀이다. 예쁘지도 않은 것이 한낮의 태양빛을 받아 빛나기라도 할라치면 그런대로 볼 만하고, 강아지꼬리처럼 흔들거리는 품새는 귀엽기까지 하다.
나는 그를 '똥개풀'이라고 부른다.
똥개들은 자기의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그 놈의 꼬리 때문이다.
그게 어때서? 귀엽기만 한데.
- 자작시 '똥개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