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나루터이정근
고민하던 병판이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던 구선(龜船)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고려시대 거북선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을 뿐, 설계도도 없었고 장인 중에서 만들어 본 사람도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거북선을 완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거북선이다.
평주로 향하던 임금의 행차가 통제원(通濟院) 남교를 지나 임진도(臨津渡)에 도착했다. 나루터에 매어있던 왜선과 거북선이 강심으로 흘러 들어가 전투 대형을 갖췄다.
병판의 군호에 따라 쫓고 쫓기는 선군전(船軍戰)이 펼쳐졌다. 거북이 모양을 한 구선(龜船)이 제법 위용을 갖추었으나 속도가 문제였다. 실망한 태종은 일언반구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우리나라 역사 문헌에 이렇게 나타난 거북선이 180년 후 이순신에 의하여 부활했다. 태종대의 거북선과 이순신의 거북선이 동일형인지 동명이형(同名異形)인지 알 수 없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충무공의 고안에 의해 나대용이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태종시대의 거북선과 이순신의 거북선 모두 설계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이 없어 그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박은과 이숙번에 이어 병조판서에 오른 탁신이 병비(兵備)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릴 때 거북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 한 것으로 보아 구선(龜船)은 돌격선으로 꾸준히 개량되었던 것 같다.
"거북선(龜船)의 전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 <태종실록>
"일본을 정벌하겠다" 명나라 황제의 통첩에 뒤집어진 조선
평주에서 휴식을 취하고 한양에 돌아온 태종에게 급박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하정사(賀正使)의 통사(通事)로 남경을 방문했던 임밀(林密)의 보고였다.
"일본국(日本國) 노왕(老王)은 지성으로 사대하여 도둑질함이 없었는데 지금의 사왕(嗣王)은 좀도둑을 금하지 아니하여 우리 강토를 침요(侵擾)하고 또 아비의 영정(眞)을 벽에 걸어 놓고 그 눈을 찌른다니 그 부도함이 이 같은지라, 짐(朕)이 병선 1만 척(艘)을 발하여 토벌하고자 한다. 너희 조선에서도 이를 미리 알아둠이 마땅하겠다."
명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것이다. 황제의 칙유를 받아든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우려했던 동북아의 전운이 조선반도를 강타한 것이다. 일본과 명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조선반도는 전쟁터가 될 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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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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