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형편을 이기고 바이올린을 익힌 김수연. 그녀는 이제 젊은 거장이 되어 있다.한길사
1998년 10월에 나는 독일 보쿰대학과 뮌스터대학을 각각 방문하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한국유학생들에게 작은 강연을 한 바 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던 길이었다. 아마도 그곳의 많은 유학생들이 한길사의 독자였을 것이다.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문적인 지식사회의 동향에 일정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인문학 출판을 주로 해오는 한 출판인의 '생각'을 들어보려 했을 것이다. 유학생들과의 대화는 나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수연 양은 뮌스터에서 1987년 11월 유학생 김동욱씨와 지경순씨의 큰딸로 태어났다. 뒷날 들은 얘기지만, 나의 강연회에 수연이의 아버지도 와 있었고 이런저런 질문까지 했다고 한다. 수연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물론 그들도 한길사의 독자였을 것이다.
독일 도서전에서 돌아온 나의 일상은 다시 '책'과 씨름하는 나날로 바빠지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출판인은 오직 책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났고, 우리는 창사 25주년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독일에 가 있던 강옥순(현 도서출판 열린터 대표) 주간이 나에게 수연이 이야기를 했다.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수연이를 한길사가 초청해서 '귀국 독주회'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출판사가 느닷없이 음악회를 왜 기획하느냐에 대한 의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음악회를 열자면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래 책! '책'이었다. 나는 독일 강연회에서 책과 출판문화에 대해 유학생들과 토론했고, 신학을 전공하는 수연이의 아버지 김동욱씨는 나에게 '책'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수연 양이 책 읽기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책과 음악, 모두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한길사가 음악회를 기획할 수 있다! 늘 책을 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을 초청해서 창사 25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하자! 그렇게 하여 한길사는 다른 계획들을 접어두고 '김수연 초청 바이올린 독주회'를 준비하여 2001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그 계절에 열게 되었다.
수연이의 음악회를 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유학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학업은 물론 생활 자체가 어려워 진 것이다.
가난한 유학생의 큰딸 수연이의 음악공부도 힘들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연이의 음악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이런 수연이를 뮌스터의 한국 유학생들은 물론 뮌스터 시장까지 나서서 성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93년 뮌스터 시립음악학교에서 마야스 선생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김수연은 94년에 독일청소년음악콩쿠르 뮌스터지역대회에서 만점을 받아 1등을 하는 등 어떤 콩쿠르라도 나가기만 하면 1등을 했다. 만 아홉 살의 나이로 뮌스터음대에 진학했다.
이런 수연이를 고국의 무대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었다. 한국에서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면 정말 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은 수연이를 저렇게 키워내고 있지 않은가. 남의 나라 유학생의 자식을 정성을 다해 당당한 음악가로 교육시키고 있지 않은가.
한국과 유럽의 장점을 갖고 있는 수연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