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묘 모스크의 천정.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조수영
몸에서 천연향이 풍겼던 향비
향비는 아팍 호자의 외손녀이다. 그녀는 절세의 미인으로 몸에는 항상 특이한 천연향이 풍겨나 사람들은 그녀를 향비(香妃)라 불렀다.
청나라군이 천산남로를 평정하여 이곳에 이르렀을 때 향비는 이미 정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현혹된 건륭제(乾隆帝)는 그녀를 자금성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를 위해 궁 안에 이슬람식 집과 모스크를 지어주기까지 했다.
궁중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신강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그녀가 위구르 전통복장을 입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향비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굳건히 절개를 지켰다.
하루는 황제의 명을 받은 궁녀가 향비를 찾아가서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자 향비는 칼날이 시퍼런 비수를 내밀었다. 놀란 궁녀는 달아났고 이를 들은 태후는 황제가 교외로 제사 지내러 나간 틈을 이용하여 향비를 불러 그녀에게 생각을 물었다. 향비는 '죽음으로 절개를 증명해 보이겠다'라며 바로 자살하였다.
실제 향비는 건륭제의 여인들의 무덤인 유릉비원침(裕陵妃園寢)속에 잠들어 있다. 하북성에 있는 유릉비원침에는 36명에 이르는 건륭제의 여인들, 즉 황후, 황귀비, 귀비, 비, 빈, 귀인이 함께 잠들어 있는데 향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어떤 중국학자들은 향비가 건륭제의 용비(容妃)였으며,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반란평정전쟁에 참가하는 등 중국인과 위구르인의 단결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궁궐에 들어온 후 황제와 태후의 총애를 받아 귀인에서 빈으로 승격하였다가 더 나아가서 용비가 되었고, 위구르족 전통 복장을 하고 회족 음식을 먹으며 황제를 따라 각지를 주유하는 등 자금성에서 28년간 생활하다가 58세에 병으로 죽어 동릉에 묻혔다는 것이다.
향비는 청나라에 대항한 위구르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