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환자의 새해 소망

불량 환자, 하루라도 빨리 깁스를 풀어야 하는 이유

등록 2006.12.30 12:38수정 2006.12.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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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오른팔을 몸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 모습이 얼핏 보아도 팔을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크발을 처음 만난 건 성탄절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이크발이 걸치고 있던 웃옷을 걷어 올리자, 뭉툭하게 튀어 나온 팔굽 부위는 뼈가 어긋난 것처럼 굴곡이 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팔을 보며 그저 산재를 당해서 왔구나 생각했는데 그가 털어놓는 문제는 산재가 아니라, 출국과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BRI@이크발에 의하면 열흘 전 가구 공장에서 물건을 나르다, 물건이 무거워 넘어졌는데 회사에서 치료도 해주지 않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그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저를 안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번 전화했던 분 맞지요?"
"글쎄요, 전 이크발을 오늘 처음 만났는데요..."
"얼마 전에 입사한 지 보름도 안 된 외국인이 있는데, 모친께서 돌아가셔서 귀국해야 하는데 절차나 비용 등에 대해 직원이 이해를 못한다고 통역 부탁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항공권을 사 주기 어려우면 가불이라도 해줘서 모친상을 치르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아, 그 회사예요? 그때 이 사람이 귀국하지 않았었나요?"
"네. 본인이 첫 월급도 타지 못했는데 비용 부담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했었어요. 입사한 지 오래 됐으면 가불이라도 해 줬을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산재를 당했네요."
"산재는 아니고요,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갑자기 일을 하다 보니까 이상이 생긴 거구요, 여긴 무거운 것을 많이 드는 공장이라 일을 시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돌아가서 치료받으라고 했어요."


이어 회사 직원은 "우리도 산재 처리를 해 주면 마음 편하고 좋죠"라고 말을 하며, 산재 처리를 할 수 있으면 할 듯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크발의 사고 후 취한 조치를 보면 산재 처리를 할 의향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사고를 당한 지 열흘이 될 때까지 붓기가 빠지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는 팔을 보고도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게 하기는커녕, 출국하라고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모친상을 당했다는 사람에게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고 가불도 해 주지 않는 정도면 매사가 칼 같은 회사라는 것은 짐작이 갔습니다.


그런 이크발을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보며 뼈는 사고를 당했던 흔적은 있지만 다행히 잘 붙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대가 파손되어 깁스를 하고 3~4주 정도의 안정이 필요하다며 주사와 함께 한 달치 약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깁스를 한 이크발의 팔
깁스를 한 이크발의 팔고기복
앞으로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이크발은 돌아오는 길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쉼터에 다다를 때쯤 해서 깁스를 하여 팔을 고정하려고 목에 걸치고 있던 끈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답답해서'라고 하더니, 그 다음날에는 "다 나았어요"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대로 낫고 싶으면 답답해도 그 끈 그냥 목에 걸고 있어요"라고 말을 하며 조급해 하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만난 이크발은 또 다시 깁스를 고정시키는 끈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자네 이러면 불량 환자야. 치료가 안 돼." 그러자 이크발은 깁스를 하고 붓기가 가라앉았다고 손으로 만져보라고 툭툭 치면서 멋쩍어 하더군요.

멀쩡했던 사람이 한쪽 팔을 고정시키고, 목에 끈을 걸고 있으면 불편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 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도 함께 하지 못했던 아픔을 털고,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날 때 냈던 빚도 갚고자 하는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 보름도 안 돼 모친상을 당하고, 다시 얼마 안 돼 짐을 나르다 넘어져 깁스를 하고 직장을 잃은 이크발에게 금년은 모진 한 해였을 것입니다. 내년에는 건강하고 밝은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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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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