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영
2월 초순, 입춘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몇날 며칠 따사로운 볕이 대지를 뒤덮었습니다. 얇게 깔려 있던 둠벙의 살얼음마저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볕에 감사하며 나는 둠벙 바로 옆에 세워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부엽토와 쌀겨를 이용해 거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언 땅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밭을 일구기에는 일렀습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안의 흙은 부드러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또 다른 비닐 터널을 만들어 상추나 시금치 등을 갈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손을 놓고 가만히 귀 기우려 보았습니다. 분명 개구리 울음소리였습니다. 둠벙 쪽이었습니다. 아직 언 땅도 채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개구리가 나왔단 말인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여름 내내 무논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개구리 소리와는 또 달랐습니다. 한여름의 개구리들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라면 이른 봄 개구리들은 실내악처럼 잔잔했습니다. 짱짱한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둠벙이 이제 마악 깨어나는 소리였습니다. 겨우내 어떤 미세한 소리는 물론이고 꼼지락거리는 생명체조차 느낄 수 없었던 둠벙이었습니다. 그저 바람 소리만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른 봄 개구리 소리는 생명이 움트는 소리였습니다. 움터 오르는 새싹을 볼 때처럼 어떤 생명력이 느껴져 왔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가며 둠벙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둠벙 가까이에 다가가기도 전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딱 멈췄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역시 둠벙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숲속 부엽토에서 혹은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마 악 깨어난 수컷 개구리가 암컷 개구리를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자식들, 잠깐 기달려라, 어디 낯빤대기 줌 보자."
이번에는 녀석들의 모습을 붙들어 놓기 위해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를 동원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았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전 날처럼 둠벙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음반의 전원을 끌 때처럼 갑자기 개구리 울음 소리가 멈췄습니다.
눈으로 둠벙 구석구석을 훑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개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막대기로 수생식물들이 녹아 있는 수풀을 들춰 보았지만 개구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풀 깊숙이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며칠쯤 지났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른 봄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며 시금치 싹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