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의 도> 표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참 많이 긴장했다. 강의할 땐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허둥댔고, 강의가 끝나면 분필 가루가 노상 옷에 묻어 있었다. 하도 부담스러워서 입 안이 다 헐 정도였다.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정훈 참모니까 당연히 잘 하는 것 아니냐"고들 했다. 그러나 난 매일 밤낮 남모르게 노력했고, 실수 없이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소화불량증에 걸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대개 일주일 분 강의할 제목을 정한 다음, 각 강의의 핵심 내용이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뒀다. 그러고 나서 강의 시작 이틀 전까지 내용을 확정한 뒤 반복해서 연습했다. 출근길에 사무실까지 걸어가면서 난 늘 중얼거렸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000입니다."
이렇게 중얼중얼 연습하고 나면 한결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강의는 '적자존(適者存)'이라는 제목으로 한 강의다. 당시 육군본부에 가 보면, 강당의 넓은 회색 외벽 높은 곳에 '强者存'(강자존)이라는 한문 구호가 쓰여 있었다. 너무 크게 써 놔서 균형에 어긋나 보이던 그 구호를 만든 건 당시 군을 장악하고 있던 신군부 인사였다.
그 구호가 참으로 못마땅했지만 정면으로 반박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그들이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10분 정신교육을 해서 마음속의 불쾌함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들의 주장에 맞서기 위해 아예 제목까지 같은 세 글자인 '적자존'으로 정했다.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맹수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약한 짐승을 함부로 잡아먹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먹이사슬에 불균형이 발생하고 생태계의 생존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힘은 자연과 환경, 다른 개체와 조화를 이루고 적응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동물세계의 질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사회생활에도 적용된다. 진정으로 강한 힘은 지배력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끌고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기에 이타적인 사랑의 힘이 가장 강한 힘이라 하지 않는가? 힘센 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우격다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는 논리 아닌가.
하나의 강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이름 모를 약자들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강한 강철은 부러지기 쉽다. 물리적인 폭력은 언젠가 반드시 그보다 강한 힘에 의해 망한다. 이는 역사의 법칙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군 사령관께서 날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자주 있는 일이라 별 부담 없이 사령관실로 올라갔다. A사령관께서는 찬바람이 감돌 정도로 엄격해 사람들이 꺼려하기도 했는데, 강의 시간엔 과묵하게 주로 듣기만 했다.
사령관께서는 내 주장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전에도 강의가 끝난 뒤 날 불러 격려해줬던 사령관께서는 이날은 평소보다 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칭찬해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사령관의 거듭되는 칭찬에 난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 있게 강의했다. 그 후 강의내용을 모아 <간부의 도(幹部의 道)>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2군사령부에 속한 모든 영관급 간부들에게 읽게 했다.
대령도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병사들은?
그러나 세 번째로 맞은 군사령관은 작심한 듯 드러내놓고 나를 미워했다. 이 분은 내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겁 없이 발언했다가 3군단으로 쫓겨날 때 인사운영감을 했던 분이다.
이 분은 나를 '가까이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보신 건지, 도무지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조건 나를 싫어했다. 참모회의 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정훈 참모! 일 똑바로 해! 형편없는 놈! 나한테는 안 통해!"라며 날 모욕했다. 사령관이 구체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인격적으로 모욕하니, 난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대령 계급을 달고 있는 참모에게 업무에 관해 질책하는 게 아니라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은 아마 이 지구상의 어떤 군대에도 있을 수 없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군사령관의 태도는 다른 사람 눈에도 정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처지가 딱해보였던지 한 번은 참모장이던 K 소장이 날 불러서 위로했다.
"정훈 참모! 새로 오신 사령관님이 왜 저러시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오! 아마 정훈감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싶어 저러시는 것 같은데, 너무 기죽지 마시오! 나쁜 때가 있으면 또 좋은 때가 있는 법이오!"
사실 당시 난 정훈감이 되는 문제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령 계급장 달고 국방부에서 근무하다가, 중령이 근무하던 3군단 참모 자리로 쫓겨날 때 이미 장군 진급이 되지 않도록 사실상 결정됐다고 보던 내게 무슨 미련이 있었겠는가? 군을 개혁해야 한다는 일념뿐이던 내가 그런 사령관의 참모 노릇을 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게 너무나 분하고 지겨웠다.
고급 간부이던 내 처지가 이럴진대, 그렇지 않아도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 병영 생활을 해야 하는 병사들이 상관마저 잘못 만나면 그야말로 죽지 못해 견디는 지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간부들은 퇴근이라도 할 수 있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않다. 이 또한 군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 중 하나다.
사령관한테 이유 없이 미움받아 욕만 먹으니 부대 내에 머물러 있기가 죽기보다 싫어졌다. 매일 오후5시에 일과시간 종료를 알리는 나팔이 울리면, 난 지긋지긋한 부대를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서울로 외출 나왔다가 일요일에 다시 대구로 내려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괴롭히는 사령관을 피해 신학교를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