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문학에서 삶문학으로의 전환을 한 조정환씨.조성일
조정환은 '카이로스의 문학'을 '삶문학'의 동의어로 생각한다고 했다. 문학은 대중의 사상과 정서를 이끄는 전위활동이 되어야 한다며 첨예한 언어와 단정적 문체로 '노동해방문학'을 외치던 조정환의 수사법이라면 일면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했던 모든 것이 녹아내렸죠. 한국의 권위주의 권력도 무너지고, 실존하던 사회주의의 권력도 실패로 돌아갔잖아요. 그래서 저의 관심사는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것들'이 기초해 있는 '삶'과 문학의 만남을 탐구하는 것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조정환은 문학이 '객관현실'의 관념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삶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고민해본 결과, 1990년대 이후 삶의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노동해방문학을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었으며 실재로서의 삶을 현실성(actuality)의 차원으로 환원해 왔음을 깨닫게 했다. 문학 역시 자본에게 포섭되고 있는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학 잠재력의 실현이 곧 삶의 안보, 삶의 건강의 실현과 같은 궤도에 놓인 시대임을 자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조정환은 지금까지 지구화가 세계적으로 통합된 생산, 세계시장, 제국적 주권형태의 창출을 가져오고 있고, 그것이 민족문학의 주체성 이념의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민족문학이 여전히 유효하다거나 민족문학의 재건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산초 판사를 잃은 돈키호테 같은 형국이라고 비판한다.
박노해와 서정주
조정환은, 1988년 무렵 처음 만나 1989년 <노동해방문학>을 함께 창간하는 등 "매일 뭉쳐 다녔던" 막역한 동지였지만 요즘은 만나지 않는 박노해 시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 | 조정환은 누구인가 | | | | 당시 주류였던 민족문학론에 대항하여 '노동해방문학'을 제창하며 1989년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하는 등 문학운동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던 조정환은 1990년 말 '국가보안법'에 의한 전국지명수배가 내려지자 '이원영'이란 필명과 합법적(?)으로 취득한 운전면허증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살다 1999년 말이 되서야 자신의 본명을 되찾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고에서 2년, 공군사관학교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었던 조정환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던 1986년 '민미연(민중미학연구소)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기도 했었다.
애초 수배 상태에서 잡지를 낼 각오를 했던 조정환은 1989년 3월8일 가출(?)했고, 그해 8월14일,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병원에 다녀왔다가 조직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금 '제국 속에서(Within Empire), 제국에 대항하여(Against Empire), 제국을 넘어서(Beyond Empire)'라는 의미의 다중문화공간 '왑'(WAB)을 재편한 다중네트워크센터(MNC)를 통해 다중지성들과 접속하고 있다. 아울러 웹저널로 펴내는 <자율평론>의 오프라인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구제국> <21세기 스파르타쿠스>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 <아우또노미아> <제국기계 비판> 등을 쓰는 한편 홀로웨이의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네그리의 <미래로 돌아가다>, 쏘번의 <들뢰즈 맑스주의> 등 많은 책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 | | | |
조정환은 박노해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후 시적 긴장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박노해 시인이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정리해고를 무조건 반대할 때, 박노해 시인은 이 시기를 놓치면 세계 경제 속에서 우리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었죠. 박노해 시인의 반문에는 인간의 존엄보다 시장의 존엄을 더 중시하게 되는 박 시인의 가치관의 변화가 깃들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정환은 생존단계의 산물인 '고르게 부자인 삶'에 대한 꿈 대신 '고르게 덜 벌어서 덜 쓰는 삶'의 꿈을 지녀야 한다는 박노해의 문화론은 "시장의 몸통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시장 섭생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 조정환은 친일시비가 끊이지 않는 서정주 시인에 대해서도 "그가 죽지 않았다면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지도 모른다"로 시작하는 분석글의 다소 냉소적인 서두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서정주 시인은 처음에는 사회주의 맛도 보고, 민족주의자 행보를 걷기도 합니다만 결국 선택적 친일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정환은 서정주 시인의 해방 이후 행보를 보더라도 친일정권인 남한 정부를 치켜세우고, 전두환을 미화하는 등 1930년대 이후 늘 국가권력을 편들면서 한국문단의 주류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극복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물론 서정주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근거가 되는 깊은 감화력을 갖고 있는 순수서정시에 대해서는 정치한 미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감화력의 정체가 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서정주는 지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네그리와 자율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