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소총소대장 시절, 1969년 겨울 한강 하류. 멀리 뒤로 보이는 산이 북한이다.박도
“선생님이 근무하실 때 연대장이 누구였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김아무개 대령이었다”고 대답했더니,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마침 그 녀석이 졸업반이라 얼마 뒤 졸업식 날에는 왕년의 그 무섭던 연대장이 내 자리로 찾아와서 “박 중위, 아니 박 선생, 철없는 자식 가르쳐준다고 수고했소” 악수를 청하고는 굳이 기념사진까지 같이 촬영하자고 했다.
내가 근무한 이대부고는 개교 때부터 남녀공학이었다. 그 몇 해 뒤에는 한 여학생을 교지편집반으로 지도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도 왕년의 연대장 박아무개 대령이었다.
여러 해 교단에 있었더니 고교 친구 처제, 아버지 친구 아들, 고향 친지 아들 등에다가 제자의 아우 삼형제들도 가르치게 되어 새삼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쓴 뒤부터는 더욱 세상이 좁다는 것을 알게 한다. 무시로 달리는 독자의 댓글에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동창, 제자, 친지들이 지난날을 증언해 주거나 비판해 주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 글이 생명을 얻어 살아남으려면 진실해지지 않고는 발붙일 수 없다.
“도둑질하고는 못 산다”
내 할머니는 늘 “도둑질하고는 못 산다” “거짓말하고는 못 산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아무도 몰래 도둑질한 것 같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고,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어딘가는 있다는 말일 게다.
한때 나랏돈을 도둑질하거나 기업체로부터 정치헌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검은 돈을 마구 꿀꺽 삼키면서 잘 나가던 정치인들이, 종내에는 쇠고랑을 차고 교도소에서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걸 자주 본다. 아마 당사자도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몰랐을 거다.
노자의 <도덕경> 에 다음의 글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失)”
또, “하늘의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낸 법의 그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법의 그물망을 잘 피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죄는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설사 사람이 만든 법망을 요리조리 잘 피해 벗어났다고 할지언정, 끝내 하늘의 그물망에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내가 지은 죄는 당대에 벌 받지 않으면 자식 대에 업죄로 남아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친일파 후손들이 그동안 호의호식했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살아있는 한 두고두고 매도당할 테니 얼마나 불쌍한 인생들인가.
깁스한 발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며 창을 통해 바라보니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다. 이 세상 삶이 끝난 다음 하늘의 그물에 갇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남은 인생, 그동안 이생에서 지은 죄 닦음을 해야겠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띄웁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