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
그 동안에 연극은 서구식의 프로시니엄 아치가 있고 관객은 숨어있었다. 객석은 깜깜하다. 제4의 벽이 있는데 그 제4의 벽을 뚫고 연극을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관음병 환자처럼 남의 방을 훔쳐보는 것 같은 그런 구도가 서양의 볼거리였다. 그렇게 익숙해오니까 우리가 연희되어온 우리들의 볼거리를 공연하면 다 낯설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것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니 하는 일련의 현대 희곡들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없이 흘러와서 그렇다. 구한말 이후의 한일합방, 합방으로 우리의 모습을 치우려 했던 36년, 남북전쟁으로 인한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군부가 미신이다 뭐다 해서 전통을 치우려 했던 그런 세월, 한 100년 동안 전통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끊어지면 사실 우리는 정신없는 사람들이 된다.
우리 선조들이 놀았던 탈춤이나, 판소리 등을 찾아보니까 객석과 무대는 나눠진 것이 아니라 거의 등고(等高), 같은 높이에 있고 ‘내가 만들었으니까 봐라’가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그런 형식이다. 그러니까 많은 몫이 관객에게 주어져 있다. 작품자체는 생략과 비약을 좋은 구조로 써먹었다. 생략과 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 양반(관객)들이 그냥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저 양반(관객)들이 충분히 같이 볼거리를 운영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저쪽에서 보면서, 예를들면 “박수고개 얼른 넘어 춘향의 집에 당도하니 후원에서 비는소리가 들리는데..” 그러면 벌써 이도령이 성춘향을 보고 싶어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박수고개 얼른 넘어 몇 마디 안했는데 벌써 담 뒤에 와있다. 그것을 상상하면서 자기(관객)가 다 연출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정화수 떠놓고 장모가 이러고 있다. “내가 어사된 것이 선영덕인지 알았더니 저 빙모의 덕이 반이 넘는구나” 이런단 말이다. 그 모습을 관객은 다 머릿속으로 그린다. 그릴 수 있지요. 이렇게 담 넘어 넘겨다보면서 전라감사나 어사를 해주지 않으면 춘향이 죽겠다는 빙모의 모습하고, 그것을 넘겨다 보는 이도령의 모습을 (관객이) 그릴 수 있다. 그럼 이 자식이 싸릿문을 들어서면서 “야 장모 나 어사 됐다” 그래야 되는데 이게 또 얼씨구씨구하구 백년 거지로 나온다. 그것을 몇 마디로 합니까? 순 몇마디 안한다. 몇마디 안하고 거기까지 막 뒤집어 업고 난리 친다. “박수고개 얼른 넘어 춘향이집..”. 박수고개 얼른 넘을 때는 아~ 춘향아 그럴 심사로 왔지만 물론 춘향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단 장모를 보러 온 것이지요. 장모를 보러 왔으면 이렇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뒤집어서 뒤집어서 뒤집어서 엇간다고 해야할까? 전혀 예상 밖으로 의외성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이 양반(관객)들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즐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막 뒤집는다. 그것이 바로 생략이고 비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놀아진 판을 만들다보니까 별로 설명 안 해도 대충대충해놔도 이 사람(관객)들이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어붙이고 생략된 것을 메우고 비약된 부분을 이어붙이는 것, 그 재미가 구경하는 재미다.
볼거리 보러가자. 그러면 현실은 그냥 개판이다. 재미가 하나도 없고 답답하고 그런데 볼거리 보러 가면 내 맘대로 이렇게도 꿰매고 저렇게도 꿰매고 이렇게도 메우고, 내가 그림을 그릴수도 있거든. 그래서 즐거워서 가는 것이다. 그것이 동양, 특히 한국 우리 선조들께서 볼거리를 만든 정신,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저쪽에서 되도록 참견한 꺼리를 많이 줘야한다. 당신(관객)들이 심심하면 안 된다. 팔짱끼고 구경한다. 남 방 훔쳐보는 사람들이라고. “어이 잘한다. 저년, 생기기는 서운한데 소리는 꾀꼬리네. 저기서 수건을 놓으면 안되는데, 아니 거기가 아니야 조금 있다가 내, 아이구 저거, 나한테 배워야 돼 저년” 이래가면서 또 한 잔하고 그러고 또 구경하고 그러거든.
그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판소리 한마당 완창을 하려면 8시간 9시간 걸린다. 고수가 세 사람이 바뀐다. 북치는 사람은 세 사람이 바뀌는데 소리하는 사람은 혼자서 한다. 그것이 3.4조 4.4조로, 우리 숨쉬는 식, 우리 숨쉬기에 얹히는 것이다. 무조건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박수고개 얼른넘어 춘향집에 당도하니 후원에서 비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뭐냐 숨쉬는데 슬쩍슬쩍 그냥 얹히는 것이다. 9시간을 노래하는 것이다. 안숙선이 키 150㎝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하잖아. 하여튼 그런 지혜로움, 판소리 만드는데 그런 지혜로움이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저쪽(관객)을 믿었던 것이 더 중요하다. 관객과 같이 만든다.
되도록이면 이런 요소, 이런 징검다리가 있으면 저 사람들이 보는 것이 쉽겠구나 이렇게 징검다리만 있으면 대충간다. 그런 것을 잇는 재미를 가지려고 저 사람(관객)들이 보러 온다 그렇게 생각한다.
- 내년에 연극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연극 교육이 중 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
| | | 이 시대 대표 연출가 오태석 | | | |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시작, 1967년 <웨딩드레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40여년의 연극 인생을 살았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전통성)을 고수해오며 우리 연극 문법과 시대마다 연극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해 왔다.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고 연극을 통한 메시지로 경종을 울리며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소중한 정서들, 의식들, 사람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진언하고 있다.
김수근 문학상,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 연극평론가협회상, 연극협회상, 기독교 문화대상 외 다수 수상 | | | | |
자기를 쉽게 열 줄 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 여러 가지 사회와의 약속, 제약에 맞추어 가야 된다. 그러나 자꾸만 자기를 닫게 되어있다. 유일하게 무대라는 것은, 곧 연극이라는 것은 자기를 여는, 스스럼없이 열수 있는 (외부와) 충돌하는 것이다. 충돌하니까 열어야지 충돌하는데 열지 못하면 깨지는 것이다.
(연극 교육은) 열 줄 아는 것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열 줄 안다는 것은 뒤집어서 저쪽이 연 것을 본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토론을 못한다. 국회를 봐도 그렇고. 자신을 열 줄 알면 토론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내 소견을 얘기한다.
소견을 갖는 것은 자기의 우주, 소우주가 되던, 큰 우주가 되었던 자기 자신이 열심히 그것을 가꾸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누가 소견을 가지면 “쟤 이상해, 왕따” 이렇게 왕따 당했다. 다양성이 다 없어졌다. 누가 어쩌자 그러면 다 따라가고, 어쩌자 그러면 다 따라가고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저 사람 저런 소견이 있구나 저것도 들을만해, 왠만하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한 10년 지나니까 그 말이 정말 좋은 말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할 때 질이 풍부한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
- 젊은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
세상이 점점 미분화 되어가고 있다. 직업도 너무 많아서 자기만 아는 사회에 있다. 하루 종일 거기에 파묻혀 있다시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하는 경우도 많고 외로움을 탈 때도 많을 것이다. 자기 혼자 처져 있는 것은 아닌가? 나 혼자 마치 우주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느낌도 들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을 와야 될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은 음악회일 수 있고, 콘서트일수도 있고, 구체적으로 희로애오를 표현해주는 연극 공연장 같은 곳일 수 있다. 이곳에서 같이 막 웃다보면 나만 웃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웃어, (이것을 보고) 나도 동시대에 같이 가고 있구나, 내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다.
그것을 한번 거쳐야 다시 (일상으로) 가서 일 할 수 있다. 마치 월사금 내듯이, 매달 한번씩은 이 생생한 라이브를 보러가야 되지 않을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이래야지 집안에서도 처(妻)하고도 얘기를 주고받는 그런 세상이 될 것 같다. 한달에 한번은 월세 내듯이 와서 공연을 구경하고, 같이 숨쉬기를 하라. 숨쉬기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라.
80년에 뉴욕서 7개월을 브로드웨이에서 남의 연극을 구경한 적이 있다. 문예진흥원에서 보내줘서. 한 3개월 지나니까 문제없겠더라. 동구라파 그러니까 체코, 폴란드, 헝가리에서 온 작품들을 보니까 우리하고 비슷했다. 그 작품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서구식 프로시니엄 아치 안에 들어가는 것이 연극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저 것이라면 나는 너무너무 많지 않은가. 우리 집 창고 안에 우리 유산이 너무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빨리 오고 싶었다. 1년 더 있어도 되는데 자르고 왔다.
과학적인 유산, 문화적인 유산이 아주 너무너무 방대하다. 이것을 캐가지고 얼마든지 팍팍 뛰어오르는 활어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창고는 무궁무궁 하다 그것을 꺼내서 활용하라.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 연 명 :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공연기간 : 2002. 12. 12 ~ 2003. 2. 23
공연장소 :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
문의전화 : 745-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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