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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연합뉴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100달러 위조지폐를 잘 만들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낸다"면서 위폐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했음이 드러났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단독입수한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이같이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애매한 신호(mixed signals)를 보내서는 안된다, 애매한 신호는 애매한 발표(mixed statement)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 한미 공동의 강경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사실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는 점만 부각시켰다.

더구나 약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모든 문제가 풀린 것으로 판단, 미국의 위폐 문제 제기를 간과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가 최근 6자 회담이 표류하는 난관을 맞게 됐다.

대단히 안이한 대응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국민과 여야 정치권을 모두 속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10일 워싱턴에서는 무슨 대화가 오갔나

<오마이뉴스>는 최근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작성한 '한·미 정상회담 결과' 보고서를 입수해 면밀히 대조·분석했다.

우선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0일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Oval Office)과 오찬장(Old Fam Dining Room)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북 지원식량 분배의 투명성 문제에 이어, 북한 위조지폐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하며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또다른 문제는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illicit business)들이다"고 말문을 뗀 뒤에 "위조지폐 문제가 있는데, 그들은 100불짜리 위조지폐를 매우 잘 만든다"면서 "최근에도 위조지폐 범인을 잡았는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법적 대응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또다른 북한의 불법행위와 관련해 "아울러 마약거래도 큰 문제다"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핵물질의) 확산인데 핵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곳에 팔아넘겨 '더티 밤'(dirty bomb, 편집자주 : 방사능물질을 이용한 소형 폭탄)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다"고 말해 북한의 핵물질 제조 및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그래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외교가 우선이며 최후의 수단으로 안전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군사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나는 북한에 군을 투입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은 애매한 신호(mixed signals)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며 "애매한 신호는 애매한 발표(mixed statement)로 이어진다"고 말해 한·미 양국이 북한의 불법행위를 경고하는 데 분명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100불짜리 위조지폐를 매우 잘 만듭니다"
[전문] 부시 대통령의 위조지폐 등 관련 발언

▲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 위폐문제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ㅇ "또다른 문제는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illicit business)들입니다. 위조지폐 문제가 있는데, 그들은 100불짜리 위조지폐를 매우 잘 만듭니다. 최근에도 위조지폐 범인을 잡았는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냅니다. 아울러 마약거래도 큰 문제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핵물질의) 확산인데 핵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곳에 팔아넘겨 '더티 밤'(dirty bomb, 편집자주 : 방사능물질을 이용한 소형 폭탄)이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ㅇ "그래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쟁을 우선시하고 외교를 차선으로 생각한다는 인상이 퍼진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외교가 우선이며 최후의 수단으로 안전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군사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북한에 군을 투입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매한 신호(mixed signals)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애매한 신호는 애매한 발표(mixed statement)로 이어집니다."

청와대, 3부 요인·각당 대표 초청 오찬에서도 위폐문제 등 숨겨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언론에 발표한 공식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위조지폐와 'dirty bomb'의 제조 및 유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들에 대해 공식 거론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겼다. 오히려 청와대와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발언만 공개했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걱정한 대로 북측에 '애매한 신호'를 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노 대통령은 6월 14일 3부 요인과 각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초당적 협조를 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외교가 잘됐든 잘못됐든 그 결과를 갖고 여야 지도자가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는 그 자체가 외교에 힘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권진호 국가안보좌관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 보고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감수한 4쪽짜리 '한·미 정상회담 결과' 보고에는 부시 대통령이 위조지폐와 'dirty bomb'의 제조 및 유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사실은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무늬만 초당외교?... 노무현 대통령은 3부요인과 여야 5당 대표들을 초청해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했지만 정작 부시 대통령이 북한 위폐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것 같은 '알맹이'는 빼고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보고토록 해 오찬설명회를 무색케 했다.
ⓒ 청와대
노 대통령도 한미동맹의 신뢰 손상을 우려하는 질의에 "신뢰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생각이 있지만 부시 대통령도 이번에 한미동맹은 공고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국내 일부에서 사실 이상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쉽사리 훼손될 관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박근혜 대표는 "이번 회담이 열리기 이전에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회담을 계기로 동맹관계를 재확인해서 다행이다"면서 "앞으로 이런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신경을 써달라"고 노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정부의 거짓보고를 받은 야당 대표도 북한에 '애매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대북 금융제제 '일사천리' 진행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에 북한의 위폐 제조 현황을 보고받고 '(북한의) 범죄행위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는 지침을 국무부 등 관계 부처에 하달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재무부 주도로 미국내 북한 자산을 동결하는 등 위폐문제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이때 분명하게 정해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에게 "위조지폐 문제가 있는데, 그들(북한)은 100불짜리 위조지폐를 매우 잘 만든다"면서 "최근에도 위조지폐 범인을 잡았는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낸다"고 말한 것은 미국 정부의 '사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국제 밀매조직을 적발해 4600만 달러(약 460억원) 상당의 위폐 및 가짜담배, 무기 등을 압수했는데 이때 북한-마카오 커넥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8월 17일 한국 정부에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WMD(대량살상무기) 개념을 확장시켜 북한의 위폐를 장기간 추적해온 미측의 PSI 참여 요청 사실을 5개월 동안이나 숨겼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남북 장관급회담에 관심 표명했다"는 브리핑은 왜곡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없는 사실까지도 만들어 날조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이 남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긴요하며 북한의 핵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유용한 통로로서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면서 남북장관급 회담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했다"고 브리핑한 대목이다. 다음은 당시의 공식 브리핑 내용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부시 대통령은 남북간 화해와 협력 발전에 대한 환영과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남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긴요하며 북한의 핵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유용한 통로로서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면서 남북 장관급회담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 브리핑, 6월 10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침공하거나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남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긴요하며 6자회담 관련 유용한 채널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남북 장관급회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NSC의 한·미 정상회담 배경설명, 6월 12일)


그러나 한·미 정상-오찬 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양국 정상이 '남북대화'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노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지나가듯이 간략히 설명한 대목이 유일하다.

"그동안 한국은 6000명 정도의 탈북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작년에는 일시에 500명 정도를 입국시켜 그로 인해 약 10개월 동안 남북대화가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굽히지 않고 계속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딴소리'를 했다. 부시 대통령은 "만일 국경이 개방됐다면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를 제외한 북한 주민 모두가 남한으로 내려와 북한이 텅비게(empty) 될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지, '남북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은 물론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가 굳이 "부시 대통령이 남북 장관급회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였다"고 없는 사실을 날조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에서 우려를 표명한 한·미동맹의 신뢰위기와 관련, 한·미간의 이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나머지 사실왜곡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와대 일부에서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입각하자마자 탈북자 문제로 10개월 동안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남북 장관급회담(6.21-24, 서울)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동영 띄우기'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안이한 대응으로 6자회담 표류 초래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왜곡은 결국 9월 '북핵 3원칙' 준수 등을 골자로 한 제4차 북핵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의 성과를 '과장해석'한 것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9월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여러가지 상황이 입체적으로 잘 맞아 (6자회담이) 성공했다"면서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본심을 끌어낸 것이 '해결한다'는 쪽으로 흐름의 가닥을 만들어 낸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치하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북·미의 전략적 결단을 높이 평가한 9·19 공동성명은 '모래 위에 쌓은 불안한 평화'임이 금방 드러났다. 북한 위폐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제5차 6자회담은 현재 5개월째 기약없이 표류중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한·미 간의 이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이 불가피했다'고 발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에 '애매한 신호'를 보내고 한·미간의 이견과 쟁점을 국민과 야당에 숨김으로써 오히려 북핵문제를 꼬이게 한 측면이 크다.

미국은 위폐문제 등을 포함한 북한의 각종 불법행위들에 대해 '멀티 트랙'으로 접근했는데 반해, 한국은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북·미간의 모든 현안은 일괄 타결된다는 안일한 판단에 근거해 오로지 북핵 6자회담에만 올인하는 '원 트랙'으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북미협상이 적어도 북핵문제와 위폐문제의 '투 트랙'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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