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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첫집, 산내들 와인
 소백산 첫집, 산내들 와인
ⓒ 김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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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우리가 내린 곳은 영주가 아닌 풍기시외버스정류장이었지만.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딱 2시간 만에 풍기에 도착했다.

전날 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였던 탓에 고속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을 청했고, 스르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옆에 앉은 최정욱 소믈리에가 깨우기에 고속버스휴게소에 도착한 줄 알았더니, 내려야 한단다. 벌써?

와인기행 두 번째 방문지는 '산내들 와인'이다. 경북 영주 소백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해발 높이가 600미터 가까이 된단다. 그래서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밤에는 한기가 선뜩선뜩 느껴진다고 한다.

게다가 서늘한 기온 때문에 모기가 없는 청정지역이다. 한겨울에는 눈이 내리면 들어가는 길이 위험해 차량 통행을 할 수 없어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소지는 영주시지만 풍기에서 가는 게 더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풍기시외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산내들 와인은 이곳 소백산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포도품종은 캠벨 얼리. 소백산 산향기 와인이 처음 출시된 것은 2012년이니, 와이너리 역사는 짧다. 소백산 산향기 와인 드라이와인과 스위트와인 2종을 생산하는데, 주력상품은 드라이와인이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캠벨 얼리로 제대로 된 드라이와인을 만들기 쉽지 않은데, 산향기 와인은 수입와인과 충분히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질이 좋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최 소믈리에는 서양식 정찬에 어울리는 한국와인으로 소백산 산향기 와인을 자주 추천한다.

김기진 시인이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지금은 아들인 김준원 대표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풍기시외버스정류장에서 산내들 와인까지 차량으로 삼십 분 남짓 걸린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지는데, 차 한 대밖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일부 구역은 경사가 심하다.

김준원 대표가 우리를 데리러 풍기시외버스정류장까지 와주었다. 풍기는 인삼이 유명하고 영주는 사과가 유명하다. 풍기와 영주에 오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지역특산물이 생각난다.

산내들와인 포도원
 산내들와인 포도원
ⓒ 김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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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계곡이 흐릅니다. 여기는 다 돌밭입니다. 가장 좋은 포도밭으로 치는 게 경사가 진 돌밭인데 우리 포도원이 그렇습니다. 배수가 잘 되거든요. 포도 재배에 최적이죠. 여기가 해발이 거의 600미터가 됩니다. 일교차가 심하고 돌밭이지, 배수 잘 되지, 석회질 토양이 섞여 있어 미네랄이 풍부하지, 최고의 포도산지인 거죠."

산내들 와인에 도착하자마자 포도밭을 보러 갔다. 김준원 대표가 포도밭 자랑을 한다. 포도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췄으니, 포도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천혜의 조건을 갖춰 향기가 짙고 단맛이 깊은 포도가 생산된다는 포도밭은 겨울이라 황량했다. 나뭇잎조차 없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포도나무들은 서 있기조차 힘겨운 것처럼 보인다. 포도밭은 600평 남짓.

안타깝다, 겨울에 온 것이. 포도가 한창 익어가는 시기인 여름에 방문해야 하는 건데. 직접 포도를 보고, 맛도 봐야지 제대로 포도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포도수확기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혹시 여름이나 수확기에 찍어둔 포도밭 사진이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사진도 안 찍어두고 뭐 했대요?

"여름이 제일 바쁠 때라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포도 수확하고 와인을 제조하다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거든요."

산내들 와인 제조장은 깔끔한 2층 건물이었다. 1층은 와인제조장이고, 2층은 와인시음장이다. 와인시음장은 전망이 아주 좋았다. 넓은 포도밭과 산 아래 풍경이 펼쳐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나 녹음이 짙은 여름, 단풍이 화려한 가을에 이곳에 앉아 와인을 시음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산내들 와인은 연간 1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와인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2012년에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고 소백산 산향기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그 때는 와인 1300병을 만들었다.

와인숙성탱크
 와인숙성탱크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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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원 대표 안내로 와인제조장을 둘러보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옆에 있는 살림집으로 들어갔다. 김기진 시인이 차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우리고 따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여기가 소백산 첫 집입니다. 산속이고 600 고지가 되다보니 포도가 맛이 있어요. 포도를 생산하지만 내가 한 일은 없어요. 바람이 했고, 자연이 했지. 자연이 맛을 내고, 자연이 키우는 것을 나는 옆에서 구경만 했지요."

역시 시인은 다르다. 자연에 기대어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는 깊은 산속이기 때문이다. 산내들 와인은 소백산에 있고, 뒷산은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태백산이다. 경상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3도가 맞닿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살면 마음이 저절로 비워질 것 같다.

김 시인이 처음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전은 30여 년 전이란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이곳으로 들어와 시를 쓰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내는 자식들의 교육 때문에 대구에서 살았다.

그가 처음 포도원을 조성한 것은 2002년. 좋은 땅을 놀리는 것이 안타까워, 사람들과 나눠먹을 작정으로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 뿐이 아니다. 감나무 2그루와 왕벚나무 35그루도 심었다. 덕분에 봄이면 산내들 와인 주변은 화사한 분홍빛으로 물든다. 한 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을 것 같다.

김기진 시인과 김준원 대표, 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
 김기진 시인과 김준원 대표, 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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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를 심으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수확한 포도가 그렇게 맛있더란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포도 재배 최적의 기후조건에, 경사지에, 돌밭이라는 토양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니 당연했다.

"우리 포도는 늦게 수확을 해요. 여기가 다른 지역보다 추워서 추석 전후로 포도를 수확합니다. 이 주변에도 포도밭이 많지만, 우리 포도가 가장 맛있습니다. 자연이 하는 거라서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합니다. 향기가 좋고, 맛이 억수로 좋습니다."

포도 맛이 좋다는 것을 벌과 파리가 먼저 알았다.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파먹어 버리니 상품성이 없었다. 봉지를 씌우고 관리를 해야 하는데 요령을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연이 키운다고 해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포도가 맛있어서 재배하는 양을 늘렸다. 수확한 포도의 일부는 팔고, 일부는 아는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그래도 포도가 남았다. 수확한 포도를 빨리 팔지 않으면 남은 것은 처치 곤란일 수밖에 없었다. 수확하고 3일이 지나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을 찾다보니 와인을 만들면 되겠다 싶더란다. 포도재배를 시작한 지 10년 만이었다.

와인을 제조하려면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김기진 시인은 영주세무서에 갔다. 담당자가 서류를 한 뭉텅이 주면서 빈칸을 다 메워오라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더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김 시인은 서울 국세청으로 향했다.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고 국세청 주류면허 담당하는 부서 책임자를 찾아갔다.

김기진 시인 부부
 김기진 시인 부부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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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에서 왔는데, 차 한 잔 주소. 이랬더니 당황하면서 앉으라고 하더라고."

두루마기까지 차려입은 김 시인은 아마도 예사롭지 않게 보였으리라. 김 시인은 영주세무서에서 받은 서류 한 뭉텅이를 그에게 내밀면서 정중하게 빈 칸을 메꿔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며칠을 들여다봐도 못하겠던 것을 이 사람은 금방 쓰더라고요. 계산기를 두드리고 하더니 10분 만에 빈칸을 다 채우더라고. 서류를 나한테 주면서 영주세무서에 가서 넣으면(접수시키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영주세무서에 갖다 넣었어요."

서류작성은 국세청 도움을 받았지만, 주류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국세청에서 실사가 나오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거의 2년 만에 주류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김 시인은 그 지난한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류면허를 취득하고 드디어 소백산 산향기 와인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2012년이었다.

이어지는 기사 : [산내들 와인②] 매일 아침, 와인탱크 앞에서 절을 하는 이유는?


태그:#와인기행, #산내들와인, #김준원, #최정욱, #김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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