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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에서 14년째 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노동자다.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역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마이뉴스> 5월 8일 자 이태영 기자의 기사(제목: 민족주의에 기댄 '황색 저널리즘')를 읽고 몇 글자 적는다.

이 기사의 취지는, <한겨레>의 5월 31일 자 기사(제목: 뉴라이트 교과서엔 "5�16은 혁명, 5·18은 폭동")가 반일 민족주의에 기댄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기사에서 <한겨레>를 향해 "정정 보도문을 내고, 해당 출판사와 필자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나는 신문사의 '정정 보도문'은 사실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과문해서일까. 나는 문제의 <한겨레> 기사 중 어느 대목이 '잘못된 사실'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

짐작이 가는 대목이 있긴 하다. 이태영 기자는 <한겨레> 기사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사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한겨레>가, 이번 교학사 교과서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식민통치와 군부독재를 미화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고 확정적으로 단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내 눈이 작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겨레> 기사의 그 어디에서도 그가 말한 "교학사 교과서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식민통치와 군부독재를 미화했다"는 대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기사에서 강조한 것은, 한국근현대사 서술과 관련하여 교학사 교과서가 제주 4·3사건이나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가 민간들에게 저지른 폭력을 '폭동'으로 기술하는 등 역사적인 사실 관계를 왜곡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시대 등 독재 시대에 대한 학생들의 시각이 왜곡될 우려도 <한겨레> 기사가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다. 한마디로 이태영 기자가 단정적으로 말한 "문제의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한겨레>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장 끝에 괄호를 써서 예의 <한겨레> 기사에 문제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필자들의 성향을 볼 때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다.

도대체 그의 주장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교학사 교과서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식민 통치와 군부 독재를 미화했다는 확정적인 서술과, <한겨레> 기사에 그런 "문제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추측성 서술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이들 내용을 한 문장 안에 묶어 함께 써놓고 있다. 참 혼란스럽다. 어떻게 이런 논리 전개가 가능한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그의 비판 초점은, <한겨레>가 보인 황색 저널리즘적인 행태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학계와 언론이 진영 논리로 역사를 해석하는 태도이다. 그는 진보를 '좌파 민족주의'로, 보수를 '뉴 라이트'로 구별하면서, 이들이 한국 근현대사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보려는 시각과, 식민지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로 보려는 시각을 가진 채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이런 역사 인식의 차이가 현실 정치 구도와 맞물리면서 사회 갈등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도 동의하겠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 다양한 해석들 간의 토론 과정에서 '사실'과 '가치 판단'이 구별되고,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적인 진실이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를 통한 역사적 진실 규명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역사 해석에는 갈등과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 논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치열한 다툼도 불가피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역사적 서술의 범위로 끌어들이는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과거 사실들의 취사선택과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치열한 논쟁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서로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 진영이 진짜 '친북 좌파세력'이거나 '반민족 친일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친북 좌파세력'과 '반민족 친일세력'의 개념이 수상하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원래 북한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를 가진 세력을, 후자는 식민지 시대를 학문적으로 조명하려는 태도를 가진 세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시대를 학문적으로 조명하려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한 발 양보해서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어떤 문제를 학문적으로 조명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어지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이태영 기자의 논지로 보아 '사실'과 '가치'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생산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말마따나 상대 진영이 진짜 '친북 좌파세력', 또는 '반민족 친일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전제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는 역사적인 '사실'과 '가치'를 냉정하게 구분하자고 말했다. 도대체 '사실'과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언제나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서 '사실'과 '가치'는 그 의미가 명백하게 구별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역사 서술에서는, 아니 그 어떤 글에서도 '사실'과 '가치'는 구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가령 1980년 5월 18일 이후에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사실'의 차원에서만 기술한다고 해 보자.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사건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시점)이 필요하다. 대체 우리는 그 시선의 주인을 누구로 해야 할 것인가. 벌써 이때부터 우리에게는 어떤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소설의 3인칭 관찰자 시점과 같은 중립적인 시선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장담컨대,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문체로 쓰인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100%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시선을 갖출 수는 없다. 혹시 그런 소설이 있다면 내게 보내주기 바란다. 나는 그 소설의 한 면을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주관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된 언어적 사실을 지적해 보여 줄 수 있다. 수많은 자잘한 사건의 시말과 관련자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역사 서술에서야 오죽하랴.

그럼에도 어쨌든 역사 서술에서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고, 또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역사 교과서 한 권을 집필하고 검정할 때에도 국가 교육과정이니 교과서 집필 기준이니 편찬상의 유의점이니 하는 다양한 준거 자료들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무결점·무오류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교육과정이든 교과서 집필 기준이든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내용·표현상 미흡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의적인 잣대가 적용되어 언제든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1년에 정부가 확정한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 멀쩡한 '민주주의' 대신 정체도 불분명한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간 사실을 상기해 보라. 언뜻 보면 당시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치열한 다툼 끝에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간 듯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준'은 거의 일방적으로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이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이태영 기자의 말처럼, 역사 논쟁에는 어찌 보면 소모적이고 사치스러운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역사 논쟁을 벌이는 정치인과 역사 전공자들이 고급 한량으로 보인다는 그의 비유적 진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게는 '얄밉게' 보이는 전형적인 양비론을 펼치면서 훈계하듯 말하는 그의 태도를 전혀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치인과 역사 전공자들은 역사 논쟁을 결코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아니 지금보다 더 뜨겁고 격렬하게, 그리하여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온 국민이 나서서 쟁점을 가득 안고 있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역사 논쟁을 벌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70여 년이 다 돼 가도록 일제 치하 36년에 대한 청산 작업조차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나라가 아닌가.

소설 <동물 농장>과 <1984>로 유명한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는 말이지만, 나는 이 경구만큼 역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말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번에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이 '역사 전쟁'이 되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역사 전쟁'의 한편에는 현재를 지배하는 보수적인 권력이 있다. 그러므로 그 '역사 전쟁'의 표면적이고 단기적인 승리는 보수 진영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편에 역사적인 상식과 양심을 갖춘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있는 한 '역사 전쟁'의 진정한 승리는 그 시민들 모두의 차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좌파 민족주의, #뉴라이트, #좌파 민족주의, #황색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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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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