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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지난 25일 전체 회의를 열어 대체휴일제를 포함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처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사용자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정부 측도 기업의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안전행정위원회는 29일 다시 회의를 열어 법 대신에 대통령령으로 공공기관부터 대체휴일제를 적용하자는 정부 측 제안을 논의키로 하여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국민들의 불안과 염려를 키웠다.

현행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삼일절(3월 1일), 제헌절(7월 17일), 광복절(8월 15일), 개천절(10월 3일), 한글날(10월 9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있고, 대통령령인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일요일, 국경일 중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을, 1월 1일, 설날 전날(음력 12월 말일),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 다음 날(음력 1월 2일),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 어린이날(5월 5일), 현충일(6월 6일) 추석 전날, 추석, 추석 다음 날, 성탄절(12월 25일), 공직선거법 제34조에 따른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 기타 정부에서 수시 지정하는 날을 관공서 근무자들을 위한 휴일로 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달력상 이날을 가리켜 소위 '빨간날'이라고 한다. 취업규칙 등으로 이날을 유급휴일로 정하고 있지 않은 수많은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잘못 이해하여 사용자의 출근지시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정 유급휴일은 주휴일(주차)과 노동절(5월 1일)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날을 유급휴일로 정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은 일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공휴일에 사용자의 출근 지시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 만약 이에 불응하면 결근이 되고, 그렇게 되면 그날의 임금만 못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의 주차(유급주휴일)가 발생하지 않게 되어 유급주휴일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연차휴가까지 줄어들게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원들과 같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소속한 노조가 단체협약 등으로 그날을 유급휴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제약으로 노조 설립과 가입이 쉽지 않은, 즉 노조 밖에 존재하며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중소사업장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달력상의 소위 '빨간날'은 '까만날'과 전혀 다르지 않은 날이 된다.

유급휴일 아닌 '빨간날'... 일하라면 일해야 합니다

이런 사연을 알기라도 한 걸까. 많은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나서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무려 7개나 발의했다. 발의된 법률안을 종합하면 주요 골자는 △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일과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 국경일에 관한 법률과 관공서 휴일에 관한 규정을 통합하여 단일한 법률로 승격하고 △ 공휴일이 다른 공휴일과 겹칠 때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 하루를 공휴일로 한다는 대체휴일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이 같은 법률안을 심사해 의결했다.

그러자 경총 등 사용자단체들은 이 법률이 제정될 경우 △ (임금부담 증가로) 기업경영 악화 △ (공휴일을 법률로 정한 나라가 없고, 우리 나라 휴일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제 규범에의 위배 △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어 해당 법률안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안타깝게도 국민행복을 제1의 국정목표로 삼는다는 박근혜 정부의 안정행정부 장관(유정복)까지도 사용자단체들의 이 같은 입장을 여과 없이 대변하며 힘을 보태었다. 설상가상 여야 의원들 간의 입장까지 갈리면서 지난 25일 개최된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는 오는 29일 회의를 다시 열어 법 대신에 대통령령으로 공공기관부터 대체휴일제를 적용하자는 정부 측 제안을 논의키로 하는 등 당초 입장에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조운동은 이미 단체협약으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확보하고 있는 까닭에 사용자단체들에 비하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사회적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다 이 법률 제정으로 확대된 휴식권을 보장받게 될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적절한 단체를 가지고 있지 못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보니,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이 법률안이 제대로 된 내용으로 보정되어 입법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용자단체가 '양극화'를 걱정하는 아이러니

앞에서도 주장했듯이 안정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일과 노동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관공서 휴일에 관한 규정을 법률로 승격하는 것일 뿐, 공휴일을 노동자들의 '유급휴일'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사용자들이 부담하는 임금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우 취업규칙 또는 노사 간 체결한 단체협약으로 공휴일을 모두 유급휴일로 정하고 있어 대체휴일제 외에는 이 법률 제정으로 입게 될 혜택도 거의 없다.

국제 규범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34개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길지만 생산성은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들보다 훨씬 뒤진다는 점에서 휴일 관련한 국제 규범을 이 법률 입법의 반대 근거로 내세워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법률이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을 주어 노동자들 간 또는 사회계층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등의 사용자단체의 주장은 사실관계 왜곡으로 여론을 호도하여 법률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속셈에 다름 아니다.

발의된 법률안들이 대부분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정하지 않은 이유는 유급휴일화가 노무비 상승 등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소사업장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휴식권 개선과 확대, 참정권 행사의 실질적 보장이야말로 사용자들의 이익보다 절실한 과제이고 소중한 사회적 가치이다.

따라서 국회와 정부는 최소한 사업장 규모별로 즉, 단계적으로 달력상의 빨간날(각종 국경일과 공휴일)을 유급화하는 내용을 추가하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이 온갖 서러움과 차별을 감내하며 일해온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유의미한 입법이 되고, 입법 목적에서도 더 많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토록 강력한 사용자단체들의 반발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깨어 있는 시민들과 노동자들, 언론과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분발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울산노동인권센터 소장입니다



태그:#대체휴일제 , #공휴일에 관한 법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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