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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은 13일(현지시각) 콘클라베를 열어 제266대 교황으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선출했다. 새 교황 공식 즉위 명칭은 '프란치스코'다. <연합뉴스>는 "교황청이 새 교황 공식명칭이 수사가 없는 '교황 프란치스코'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새 교황이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란치스코'라는 명칭이 갖는 의미는 "소박하고 박애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황 즉위명은 그가 앞으로 어떻게 가톨릭을 이끌어 갈 것인지 보여준다.

이는 그가 향후 활동의 모범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수도사(1181~1226)로 13세기 초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 개혁운동을 이끌어 가톨릭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환자와 입맞춤한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는 1181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 출신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였다. 그는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덕에 방탕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방탕한 삶을 그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는 늘  아시시 변두리를 배회하거나 홀로 동굴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하지만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시시 나환자촌에서 한 환자와 마주쳤다. 다른 때 같으면 돈 몇 푼을 던져주는 것으로 끝났을 것인데 그는 나환자와 입맞춤을 했다. 이 입맞춤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1205년 아시시 밑에 자리잡은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 앞에 밝힐 기름조차 살 수 없는 가난한 늙은 신부를 만난다. 그는 신부에게 돈을 줬지만 신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런 모습에 충격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물질이란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족쇄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성당 수리를 위해 구걸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209년 제자 11명을 거느리고 청빈을 목표로 한 '작은 형제들의 모임'을 만든다. 그는 "나는 청빈과 결혼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 그는 동물을 사랑해, 이들과 대화까지 나눴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오상'(Stigmata·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입은 다섯 가지 상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란치스코는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환경 보호의 수호성인'이 됐다.

그가 남긴 기도문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문을 지은 배경은 이렇다. 어느날 성 프란치스코가 있는 곳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흉측한 나환자가 서 있었다. 나환자는 몸을 녹여야 한다며 안으로 들어가기를 청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를 허락했다. 나환자는 밥을 달라고 했고, 몸이 너무 추우니 알몸으로 녹여 달라고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알몸으로 나환자의 몸을 녹여줬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흔적조차 없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가 하나님인 줄 알고 자신같이 비천한 자를 찾아주신 것에 감사하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을 청빈함으로 이끌 수 있을까 

새 교황은 이런 그를 자신의 즉위명으로 택했다. 다른 교황들과 다른 점이다. '요한' '바오로' '베네딕토'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익숙하다(전임 교황 즉위명은 베네딕토 16세).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처음으로 등장한 즉위명이다. 새 교황은 빈자와 결혼한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그동안 가톨릭은 부의 축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월 21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교황청이 무솔리니 정권을 인정해준 대가로 돈을 받았고, 그 돈을 유럽 부동산에 투자해 5억 파운드(8420억 원)를 축적했다고 보도했다(1월 22일 <한겨레> "바티칸 '부의 비밀'은 무솔리니 검은돈" 기사 참고). 또한 1978년 즉위 33일 만에 서거한 요한 바오로 1세도 바티칸의 재정 문제를 조사하려 했다가 살해됐다는 의혹도 있다.

과연 새 교황은 자신의 즉위명처럼 가톨릭의 이미지를 청빈함으로 이끌 수 있을까.


태그:#교황선출,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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