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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순 할머니의 15년간 콩요리에 몰두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FTA발효로 이 같은 순수 국산 콩요리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콩 모듬 요리 임덕순 할머니의 15년간 콩요리에 몰두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FTA발효로 이 같은 순수 국산 콩요리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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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읍 내에서 북한 강변을 따라 형성된 대이리 마을. 춘천댐, 의암댐 등 북한강 줄기에 댐들이 만들어지기 전인 근대(近代) 이전까지만 해도 화천에서 한양까지 가는 길은 뗏목이나 쪽배를 이용한 뱃길이 유일한 교통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화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북한강변 동네는 포구(浦口)라는 뜻의 '포(浦)'로 끝나는 마을 이름이 유독 많습니다.

법성포가 그렇고 안동포가 그렇습니다. 대이리라는 마을 명칭도 포구라는 어원과 무관치 않습니다. 수로운송의 거점인 대리원(大利院-)이 있던 자리라 해서 대리(大里)로 불리던 마을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부르기 쉽도록 대이리(大利里)로 바뀐 듯합니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뗏목을 이용해 콩과 감자, 팥 등의 밭 농작물을 싣고 한양 마포나루까지 강을 따라 내려가 소금이나 옷가지 등 생활용품을 교환해 왔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 의암댐과 춘천댐이 건설되고, 신작로(국도와 지방도)가 만들어지면서 이와 같은 일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순수 국산 콩으로 콩 모듬 전문 음식점 입니다.
▲ 콩사랑 순수 국산 콩으로 콩 모듬 전문 음식점 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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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순 할머니의 15년간 콩 사랑 결실

15년 전인 1997년, 임덕순 할머니(62)는 대이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곳이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콩 음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산골에서 콩을 이용한 음식이 어떤 게 좋을지 10년을 연구했습니다"

두부를 이용해 전골을 만든다거나 순두부 집 운영과는 다른, 차별화에 골몰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의 연구 끝에 지난 2007년 개발한 음식이 콩 모듬 요리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도 많았어요. 좁은 농로를 따라 차량도 들어 오기도 어려운 마을 끄트머리에 알려지지도 않은 콩 모듬 요리를 누가 찾겠느냐 는 것이 다수 사람의 의견이었어요"

역시 다수 의견은 적중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콩 요리 음식점. 읍내 한복판에 있어 남들 눈에 쉽게 뜨이는 것도 아니고, 먹어본 사람이 있어서 맛있다고 소문내 줄 사람도 없으니 손님들이 찾지 않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아마 아들(김승훈씨-예술인)과 남편의 응원이 없었으면, 일찌감치 문을 닫았을 거예요. 그런데 아들은 식당 안에 대형 그림을 붙인다, 남편은 뜰에 잔디를 심는다 하면서 용기를 심어준 것이 지금의 이 음식점이 우뚝 서게 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콩사랑'. 간판도 멋지게 붙였습니다. 10여 년을 콩 연구로 살아온 어머님을 위해 아들이 붙여준 가게 이름입니다.

음식 컨테스트는 맛과 모양의 평가보다 장기적 대중화가 중요

임덕순 할머니는 지역 요리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입선을 했습니다.
▲ 자랑스런 간판 하나 임덕순 할머니는 지역 요리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입선을 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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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어느 늦은 가을, 임 할머니는 화천군에서 요리경연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리경연대회에서 입선해서 상금을 받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오직 콩으로 만든 이런 다양한 음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참가한) 내로라하는 수십 개의 음식업소를 제치고 입선을 한 것입니다. 최우수상이나 우수상을 뽑는 것이 아니라 3개의 입선 업소를 선정하는 자리라 기쁨은 더했습니다. "수십 년간 음식업소를 운영해 온 사람들을 제치고 입선을 했다는 게 꿈만 같았어요"라는 것이 임 할머니의 회고입니다.

마케팅은 아들이 맡기로 했습니다. '입선업소'라는 수식어가 생겼으니, 임 할머니보다 더 신 난 건 아들 김승훈씨였습니다. '화천군 요리컨테스트 입선업소' 이것이 주 콘셉트였습니다. 콩을 이용한 음식의 차별화가 필요했습니다. 예약 위주의 손님만 받자. 그렇게 함으로 재룟값을 줄일 수 있고, 고객들에게 신선하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나름의 노하우였고, 지역 특산물인 자시라포크(화천 브랜드-잣 껍질을 이용해 사육한 돼지고기)와 어울린 콩 모듬 음식이 주메뉴였습니다.

"그때 입선을 했던 나머지 업소는 다들 잘 되나요?" 기자의 질문에 "유감스럽게도 모두 업종을 바꾸었거나 출품했던 음식들을 포기한 것 같아요"라는 말에 이어 임 할머니는 "음식컨테스트의 평가 주요 항목은 '대중성이 있는지', 아니면 '(대회를 위해 만든)즉흥적으로 만든 음식인지'에 대해 따져봐야 하는데, 우리나라 음식 컨테스트들은 맛과 모양만 중시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 임 할머니의 지적입니다.

아들 김승훈 씨의 '콩사랑' 홍보물
 아들 김승훈 씨의 '콩사랑' 홍보물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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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마케팅으로) 콩사랑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대도시에서 일부러 콩 모듬 요리를 드시기 위해 이곳 화천 대이리까지 찾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임 할머니의 콩 모듬 요리는 순수 국산 콩만 이용합니다. 이 콩을 이용한 두부(생두부, 튀김두부)와 김치, 자시라포크(찜과 편육), 불고기, 콩 튀김, 콩탕, 상추 등의 모듬 요리를 기준으로 산나물 등 된장찌개, 콩비지장, 두부 부침개 등 수십 가지의 밑반찬이 곁들여집니다. 그야말로 요리라기보다는 종합 콩 예술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덕분에 이 마을에 콩을 심은 사람들이 많아졌겠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콩 값이 3년 전만 해도 한 가마니에 16만 원도 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46만 원이나 한다우. 그렇다고 음식값을 올릴 수도 없고…."라고 말했습니다.

임 할머니의 흐리는 말끝을 잡아 "과거보다 수요가 많아지니까 콩을 심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 같은데요?" 라는 질문에 임 할머니는 "지역에서 콩을 심은 사람들이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콩 값이 치솟을 수밖에(콩 사랑은) 웰빙을 목숨처럼 생각해 왔는데, 중국산 콩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그나마 (식당이) 내 건물이니까 버티지 벌써 문을 닫았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임 할머니 말은 이렇습니다. 중국산 콩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면 (몇 년을 묵은 콩이기 때문에) 두부의 양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음식점을 운영하지 못하더라도 외래산 콩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임 할머니의 고집입니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고객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콩을 재배하는 농가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소규모 농사로는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온 농토를 (주택용도를 위해 필요로 하는) 도시민에게 매매하고 도시로 나가 날품팔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농민들이 급감한 이유랍니다.

"앞으로 점점 국내산 콩을 사기가 어려우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할 수 없지요. 멀리서라도 콩 심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사와야지. (부산 등) 아래 지역의 고객분들이 우리 '콩 사랑'을 잊지 않고 찾아 주실 때면 콧등이 찡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 마다 더 담백하고 건강에 좋은 콩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기도 합니다."

해맑게 웃으시는 임 할머니는 FTA가 뭔지 잘 모르십니다. 그러나 힘닿는 데까지 성실히 국산 콩 음식을 고집하시겠다는 임 할머니의 순수한 뜻이 FTA 파고에 의해 제발 꺾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화천읍 대이리 '콩사랑'에서 만난 임덕순 할머니
 화천읍 대이리 '콩사랑'에서 만난 임덕순 할머니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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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콩사랑, #임덕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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