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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야. 넌 이번에 어떤 아이디어로 응모할 거야?"

오늘도 학생 과학 아이디어 공모전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들른 동욱이가  민재를 향해 물었습니다.

"글쎄. 이번에도 역시 시각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보조공학기술을 생각하고 있어."
"작년에 네가 대상을 차지했으니 올해는 내 차지다."
"글쎄? 맘대로 될까? 하하하."
"두고 봐라. 올핸 틀림없이 나 이동욱이 대상을 타고 말 거다."
"아주 멋진 아이디어가 있나 보지?"
"응. 미아 방지용 위치 추적기 생각하고 있어."
"그래? 그거 좋은데!"
"자료를 찾아보니까 해마다 2-3백 명의 미아가 발생한대. 그 중 약 25% 정도가 장기적인 미아로 남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40명에서 50명 정도의 어린이가 해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장기 미아로 남는 셈이지."
"위치 추적기 원리는?"
"간단해. 핸폰이나 내비게이션 같은 것에 들어 있는 자기 위치 추적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만드는 거야. 그걸 어린이들이 부착하기 좋은 형태로 만들면 되잖아. 예를 들면 신발의 장식이나 벨트 같은 곳에 넣으면 어린이와 쉽게 떨어지지도 않고 말이야."
"우와. 정말 멋진 걸. 올해는 대상을 슬슬 위협받는 분위기…."
"민재. 네 아이디어는?"
"난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어플을 구상 중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스마트폰에 있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거나 간판의 글씨를 인식하게 할 수 없을까? 하고 구상 중이야."
"역시 김민재다운 아이디어로군. 근데 그게 가능할까? 이번 공모전은 발명품을 출시하지 않는 대신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개발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물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일단 책을 읽는 방법은 현재도 OCR이라고 하는 기술이 있거든. 광학 문자 판독 기술이란 건데. 아주 간단히 말하면 프린트물이나 손으로 쓴 글씨를 스캐너로 스캔해서 텍스트 코드로 바꾸는 기술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OCR 기술은 각 글자나 숫자를 식별하기 위하여, 스캐너로 읽어들인 이미지 등에 대해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나뉘어 분석한 다음 하나의 글자로 인식되면 아스키코드 등 우리가 사용하는 코드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이야. 현재도 시험 답안지의 채점이나 우편물의 우편번호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해. 이미 널리 쓰이는 기술이라고. 그걸 스마트폰에 적용해서 원하는 책을 스캐너 대신 카메라로 촬영한 뒤 OCR 기술로 텍스트로 변환하고 다시 시각장애인이 들을 수 있도록 음성으로 변환하면 가능하다는 거야."
"우와. 대단한 걸! 그럼 간판 등의 인식도 그 OCR 기술로 가능한 거야?"
"간판은 좀 더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아. 쉽게 말하면 촬영한 이미지를 구글과 같은 검색 포털 사이트의 이미지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 어떨까 해. 지금도 그림이나 동영상 같은 이미지의 검색 기능이 있잖아. 그 검색 기능을 통해 검색한 내용에 말풍선을 붙이는 거야. 그리고 자동음성시스템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음성 엔진을 붙이면 시각장애인이 들을 수 있도록 음성 변환이 가능한 거지."

민재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민재는 이렇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실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면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습니다. 동욱이도 그런 민재의 설명을 귀를 세우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뭉치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의자 밑에서 콜콜 잠을 잤습니다.

민재는 책상 위에 머리를 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오늘 마감인 아이디어 공모전에 제출할 자료를 최종 정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입니다. 별명이 고릴라인 수학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민재는 드디어 도로롱 도로롱 가볍게 코까지 골았습니다.

"누구야? 지금 자고 있는 녀석이?"

고릴라 선생님. 아니 수학 선생님이 무섭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민재의 옆에서 동욱이가 민재의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민재는 퍼뜩 눈을 뜨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앉았습니다.

"거기 김민재. 네가 지금 코 골았지? 자수하면 용서해준다."

선생님은 민재가 졸고 있었던 것을 훤히 알고 있는 듯 다그쳤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은 민재네 학교에서도 가장 무섭기로 소문 난 선생님입니다. 화가 나면 고릴라처럼 씩씩대고 코를 벌렁거리며 코에서 김이 나기 때문에 학생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전 열심히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요?"

민재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의 코가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교실 안 친구들이 모두 불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의 변하는 얼굴을 보지 못하는 민재만 눈치를 못 챘습니다.

"김민재. 솔직히 자수하면 이번 한 번은 용서해준다. 네가 졸았지?"
"아닌데요!"

드디어 고릴라 선생님의 코에서 씩씩거리며 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민재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은 한 발 한 발 민재에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김민재! 네가 졸았나? 안 졸았나? 이번엔 이동욱이 대답해라. 거짓말하면 둘 다 죽는다."

선생님은 동욱이와 민재의 책상 바로 서너 걸음 앞까지 다가오셨습니다. 동욱이는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도로롱 도로롱 코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민재가 있는 곳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민재는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민재의 눈만 보고는 민재가 잠을 자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은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김민재. 지금 나를 놀리는 거냐?"

선생님의 코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도로롱 도로롱 코 고는 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김민재. 자리에서 일어나."

고릴라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가 교실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선생님 민재가 아니고 안내견이 코 고는데요?"

동욱이가 말했습니다. 정말 도로롱 도로롱 하는 코 고는 소리는 민재의 책상 밑에서 났습니다. 얼굴이 벌게진 선생님은 민재 자리로 다가와 책상 밑으로 얼굴을 디밀고 뭉치를 바라보았습니다. 뭉치는 책상 밑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도로롱 도로롱 코를 골았습니다.

"뭐야! 개도 코를 고나?"

선생님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멋쩍게 칠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코를 골고 있던 뭉치가 실눈을 살짝 뜨고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리곤 민재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습니다. '형! 나 잘했지? 아마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형은 무지하게 혼났을 걸!' 뭉치가 자신의 발을 건드리자 민재도 손을 뻗어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뭉치야! 고맙다. 휴-!"

민재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을 때,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가 났습니다. 고릴라 선생님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는지 코를 벌렁거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교실의 학생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뭉치. 최고다!"
"우와. 대단한 뭉치!"
"너희들 고릴라 선생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거 봤어?"
"정말 난 오늘 김민재 너 죽는 줄 알았다."
"뭉치와 민재 정말 환상적인 콤비다."

학생들은 왁자지껄 떠들었습니다.

"이러다 모두 늦겠다. 다음 시간 체육이니까 모두 옷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야 해."

반장 소연이가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학생들은 모두 우르르 탈의실로 향했습니다. 민재와 뭉치도 탈의실로 향했습니다.

[뭉치가 들려주는 시각장애인 이야기] -보조공학기기-

안녕하세요?

오늘 민재형이 엄청 위험했죠. 머리좋은 저 뭉치가 아니었으면 민재형 엉덩이에 불났을지 몰라요? 아, 요즘은 학생인권 때문에 엉덩이는 안 맞나?

암튼요. 민재형과 생활하다 보면 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형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기기들 때문이죠. 시각장애인들도 그런 기기를 사용하면 조금씩 불편한 게 없어지나 봐요. 우리 형이 사용하는 기기는 여러가지예요.

우선 핸드폰인데요. 이건 소리가 다 나와서 문자도 읽어주고 인터넷도 들어갈 수 있어요. 보행네비게이션 기능도 있어서 걸으면서 길을 안내 받을 수도 있어서 저와 함께 걸으면 형이 아주 편리하게 길을 걸을 수 있어요.

또 형 책상에는 네모낳고 커다란 기계가 있는데 그 위에 책을 올려 놓으면 기계가 책을 읽어줘요. 오늘 형이 동욱이형한테 말한 OCR을 이용한 기계라고 해요.

그것뿐이 아니예요. 점자단말기라는 기계는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텍스트 파일이나 워드 파일을 점자로 바로 출력도 해주고 음악도 듣고 인터넷도 하는 기기도 있어요. 또 음성으로 녹음된 책을 페이지나 섹션 단위로 들을 수 있는 디이지 플레이어란 기기도 가지고 다니고요.

그것뿐이 아니예요. 어떤 기기는 물건에 있는 바코드를 인식해서 인터넷으로 접속한 다음 그 물건의 특징이나 가격 등을 알려 주는 기계도 있어요. 또 색깔을 알려 주는 기능도 있는 핸드폰도 있고요.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조공학기기들은 참 종류도 많고 다양해요. 이런 기계들을 잘 사용하면 시각장애인들도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민재형도 운동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잖아요. 다음에 또 신기한 기계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안녕.



태그:#안내견 뭉치, #보조공학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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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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