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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열풍입니다. 평생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내곡동이 익숙해졌고, 관심 없었던 디도스(DDoS)가 뭔지도 알게 됐습니다. 블록버스터급 꼼수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 초대형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어떤 꼼수들이 숨어 있을까요.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꼼수를 모아 봤습니다. [편집자말]
오직 그녀와의 결혼만을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오로지 속임수와 함정수를 몸소 실천한 <나는 꼼수다>의 원조가 바로 나였다. 사진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
 오직 그녀와의 결혼만을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오로지 속임수와 함정수를 몸소 실천한 <나는 꼼수다>의 원조가 바로 나였다. 사진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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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당신도 이 말처럼 연애하면서 감정이 이끄는 대로 열정을 바쳐 솔직하고 싶은가? '밀고 당기기'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소설 같은 스토리를 누군들 꿈꾸지 않으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지 마시라.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목숨을 바친 후엔 이미 사랑할 수 없지 않은가? '꼼수' 부리지 않은 대부분의 스토리는 안타깝고 슬프다 못해 실패로 끝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았다.

기발한 꼼수가 아니라 '선의의 속임수'였다고 항변하며 손사래 치지는 않겠다. 그렇다. 오직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오로지 속임수와 함정수를 몸소 실천한 나. <나는 꼼수다>의 원조가 바로 나였다.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목숨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녀를 위한 헌정드라마로 위장한 철저한 꼼수였던 것이다.

연애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꼼수에 당하면 두뇌싸움에서 밀렸다는 생각보다 '당했다'는 억울한 감정만 되살아나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을 때가 많다. 외환위기가 불러온 IMF 체제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1997년 겨울,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두 살 연하의 그녀는,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나무랄 데 없는 여인이었다.

너무 소심하고 반듯한 게 문제였지만 호시탐탐 접근하는 나를 '공주병' 그녀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온갖 넉살과 감언이설에도 요동조차 없었다. 다른 여직원을 활용(?)해 질투심을 유발시켜도 눈 하나 끔쩍 않았다. 연애대첩은 계속 빗나갔다.

방법은 있었다. 처음엔 함께 술 한 잔씩 하면 얘기도 잘 통하니깐 좋을 거라고 접근했다.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꼬치구이집이나 호프집을 거쳐야만 귀가하는 패턴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사실, 술을 이용한 것은 순전히 진도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인해 10여 년간 엄청난 대가 치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어느 날, 부서 회식이 끝나고 단둘이 남게 된 나는 기어코 그녀를 근처 호프집으로 모셨다. 그녀의 술기운을 어느 정도 확인한 나는 어렵게 인도(?)하여 은근슬쩍 ○텔 앞까지 모시고 오는 것까지 성공했다. 근데 갑자기 할 말이 궁색해졌다.

"아, 피곤해…. 잠깐 쉬었다(?) 갈래? 오늘따라 추운데다 술 한잔했더니 너무 힘들어…."
"어, 여길 왜 들어가요? 커피숍 가서 얘기하면서 조금 쉬면 되잖아요."
"시끄러워서 그래. 나, 조금만 쉴게. 아휴, 걱정 말래도… 나만 믿어. 너를 인격체(?)로 좋아할게."

하지만 그녀가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날 못 믿어? 그럼 가라, 가!"라고 다그쳤다. 평소 흠모하던 내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붕붕 날아갈 듯한 그녀에게 무슨 사기극을 못하랴. 남자의 혀, 실로 무서운 무기가 아니겠는가.

이 한 번의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인해 나는 10여 년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시작 자체가 꼼수였으니 아내는 지금껏 신뢰는커녕 뭘 해도 믿지 않는다. 속임수, 함정수 등으로 불리는 '꼼수'의 실체는 정확한 수순으로 응수하면 꼼수 쓴 쪽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보통 당하는 사람들은 당한 수에 또 당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리라. 주위에서는 상냥하고 예쁜 마누라 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조폭으로 변신하는 그녀의 실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생활 10년이 지나자 어느새 진화를 거듭하더니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내의 대응 능력 앞에 그저 한숨으로 소심하게 대처할 뿐이다.

"띠리리, 띠리리~!"
"집에서 온 전화 같은데, 받지 그러세요?"
"아니야, 안 받아도 돼…. 신경 쓰지 마!"

이 시간 분명 남편이 전화를 받기에는 껄끄러운(?) 장소라 받기 곤란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아내의 속마음, 대충 이렇지 않았을까?

'1차는 우선 배를 채우고 소주에 맥주에, 2차는 필수 중의 필수로 술 깬다고 노래 부르고 3차는 선택, 이러니 전화를 받겠어?'

회식자리 전화 안 받는 이유... '아내가 무서웠다'

내가 회식자리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는? '어디냐?' '언제 오냐?' 그런 뻔한 질문에 구차하게 대답하기 싫어서? 아니면, 방해 받고 싶지 않거나 잔소리할까 봐? 내가 전화 안 받는 것은 뒤가 구려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하지 마시라.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건 바로 무섭기 때문이다. 누가? 바로 내 아내가….

신혼 초 아내는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남편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완벽한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아내는 술자리에서 전화 안 받는 꼼수 버릇 고친다고 여러 방법을 쓰곤 했다.

-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들을 만나서 똑같이 행동한다. 물론, 절대 전화는 받지 않는다.
- "긴급" 이라는 문자메시지 발송 후,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기다린다.
-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꾸고, 현관문에 '이혼'이라고 써 붙여 놓는다.
- 5분 간격으로 아들을 시켜 계속 전화를 건다.
- 남편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무시한다.
- 무작정 운다.

처음부터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지겠다고 작정하는 남편은 없다. 굳은 맹세는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술잔이 돌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동시에 자신감이 솟는다. 그렇게 연거푸 잔을 비울 때쯤이면 열정(?)이 아직 식지 않은 새댁 아내의 폭풍이 한차례 몰려오곤 했다.

시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고, 두세 번의 고뇌 끝에 나는 심호흡을 두어 번 한 후 휴대전화를 애써 외면했다. 아니, 지금 받으면 큰일 난다. 이왕 혼날 거 바로 전화를 받으면 난리가 날 것이고 또 집에 가서도 또 한 번의 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은 자명한 사실. 폭풍은 최후에 귀가해서 딱 한 번으로 족했다.

뭐 대충 받아 보나 마나 내용은 뻔하다.

'미쳤어? 드디어 정신줄 놨구먼,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당신이 감히 나에게…. 시간이 늦어지니 미안해서 전화를 안 받는 거라고 하겠지!'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효과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애정도 함께 식어버린다고 생각한 것일까. 또, 지하라서 휴대폰이 안 터진다든지, 재킷 안주머니에 있었다든지, 배터리가 떨어졌다든지 하며 써먹던 나름대로의 이유들은 정보통신(IT)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하나둘씩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결혼 13년 차인 지금은 누군가와 늦은 밤 술자리를 갖고 있다고 하면, 아내는 냉정하고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마무리한다.

"끝나고 전화해."

남편 꼼수에 대처하는 아내의 자세 '폭풍 진화 중'

역시, 고단수다. 의외로 단순한 나를 파악해 버린 것이다. '무관심+침묵+명령'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이 짧고 굵은 한마디는 결국 상상력을 자극해 강력한 의무감을 각인한다. 

그런데, 내가 이 명령까지 따르지 않는다면? 아내의 대처방법은 그야말로 기발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전부터 집에 있는 컴퓨터에 인터넷 즐겨찾기 항목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복수가 시작된다.

밥도 주지 않고 이곳저곳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건 죄다 즐겨찾기에 올려놓는다. 즐겨찾기 항목이 너무 많아 금세 검지에 스크롤의 압박감까지 전해진다. 최신 유행을 추구하는 구매욕구보다는 나를 향한 '고의성'이 다분하다. 살며시 애교(?)를 부리며 아내 곁에 다가가도 아는 둥 모르는 둥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우스만 딸깍거린다. 이런 추세라면 곧 이상형의 남성까지 즐겨찾기에 올려놓을 것만 같다.

"자기야, (명령) 어겨서 미안해…. 화났어? 그런데 말이야, 이것 진짜로 다 살 거야??"
"……."
"나 컴퓨터 좀 써야 되는데…"
"애들 방에 가서 하든지, 회사 가서 해!"
"중요한 서류가 저장되어 있어서 여기서 해야 하는데…"
"저리 안 갈래?"
"……."

오호통재라, 어떤 꼼수를 쓴 다해도 제지하기는 이미 역부족인 듯싶다. 아, 신혼 초 몰래 담배를 숨겨놓고 피던 시절, 내가 숨겨둔 담배를 다시 숨겨두고 한 개비에 5천 원씩 팔며 폭리를 취하던 그 귀여운 아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남편의 꼼수에 대하는 아내의 대처방법은 속임수도 함정수도 아닌 몸소 터득한 생활의 발견이리니…

- 뒤도 캐지 않고, 그저 돈 쓰는 재미로 산다
- 뒤 캐봐야 혼자만 정신적으로 힘들다, 물론 시간낭비다.
- 똑바로 살라며 잔소리해봐야 입만 아프고 피부만 망가지고…
- 물증 없는 추궁에 돌아오는 것은 남편의 고도의 잔머리, 짐작만으로 결코 덤비지 않는다.(어디가? 누구야? 아닌데? 휴대폰 내놔봐? 컴퓨터 비밀번호 뭐야? 이메일 봐도 돼?)
- 하지만, 잡은 증거는 조용히 잘 수집해 둔다.

"당신의 사랑이 잔머리라면 거부하고 싶거든? 어디서 잔머리 굴리고 있어, 내가 큰머리 한번 굴리면 끝이야!"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아주 속일 수는 없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아내를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여보, 그래도 너무 매도하지는 마시라. 그래도 그 꼼수대장이 지금은 한 여성을 위해 '당신만을 사랑해'를 외치며 살아가는 순정파 남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가카와는 차원부터 다르지 않는가?


태그:#꼼수, #아내, #남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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